[스크랩] 동강 래프팅 후기(B) & 청령포 답사
만지주막에서 동동주 한잔하고 승선준비중
단합훈련
제1조 안전조라 했는데 더 많이 물에 넘어드렸다고 하는 말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고마워서인지! 아무튼 웃음바다였다
1조 한컷 해 주고 나도 더불어
본인의 가슴에 물빽(카메라 보관함- 비닐빽+반찬통+지퍼물빽)으로 이중 삼중 장치를 하였기에 물이나 습기는 스며들지 않았지만 많이 찍지 못해 죄송합니다.
동강래프팅을 뒤로하고 영월 청령포(淸泠浦)로 이동
소재지 :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는 단종이 세조 2년(1456)에 노산군으로 낮추어져 처음 유배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이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휩쓸려, 단종은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이므로, 조정에서는 영조 2년(1726)에 일반민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단종이 기거하던 곳을 의미하는 ‘단묘재본(端廟在本) 부시유지(府時遺止)’라는 비문을 새긴 비를 영조 39년(1763)에 세웠다. 청령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어제시(御製詩)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碑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 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열일곱살 소년을 철벽요새 청령포에 유폐시키고 돌아오는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다.
세월이 약이다.역사는 멀리서 바라보는 드라마다.
단종은 권력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왕위에 올라 항거할 힘도 없는 나이에 이승을 하직 했다.
-숙부! 수양숙부! 날 살려주세요, 죽이지만 마세요.
-전하,신이 신명을 다해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밤낮으로 와들와들 떨다가 죽은 조카, 수양 숙부의 묵직하고 담대한 음성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진다. 同床異夢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송이,험악한 권력쟁투의 바다에 던져진 조각배, 그가 단종이다.
1441년(세종23년)아버지 향(5대 문종) 과 어머니권씨(후에 현덕왕후)의 1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25세인 어머니는 난산으로 홍위(단종의 어릴때 이름)를 낳고 3일만에 죽음.
3일만에 어머니를 여윈 홍위는 할머니 뻘인 세종의후궁 혜빈 양씨에 의해 양육된다. 혜빈양씨는 후덕한 여자였다.
8세,1448년(세종 30년) 세손에 책봉됨, 할아버지 세종은 세손을 무척 아낌, 집현전학자들을 은근히 불러 세손의 앞날을 부탁함,
10세, 1450년 세종 승하, 문종즉위,홍위는 세손에서 세자로 책봉.
12세, 1452년 병약한 아버지 문종이 즉위 2년 3개월만에 어린 세자를 부탁한다는 허약한 고명(임금이 신하에게 하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 단종 즉위
13세,1453년 (단종1년) 10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이릍켜 김종서,황보인등을 피살하고 안평대군을 사사.
14세, 1454년 송현수(판돈녕부부사)의 딸을 왕비로 맞이함
15세,1455년 6월 수양대군이 금성대군 이하여러 종친 궁인,신하들을 유배시킴, 단종은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에 옮김,(재위 3년 2개월)
16세, 1456년 6월 상왕 복위 사건이 발각, 성삼문,박팽년등 집현전 학사출신과 성승 유응부등 사형당함.
17세,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그해 9월 순흥서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됨, 그해 10월 사사되고,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영월 호장 엄홍도가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장,
이상은 우리가 익히 악고 있는 단종의 애사다.
반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보는 이의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그 권력이란 게 무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권력이란 말인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운다.
암장된지 60년 후 노산군의 무덤을 겨우 찾았다. 그로부터 15년후 그곳에 간단한 석물을 세웠다.
청령포는 천혜의 요새다. 나룻배가 드나들 나룻터를 제외하면 3면이 깍아지른 절벽이다. 입구를 막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만지주막에서 동동주 한잔하고 승선준비중
단합훈련
제1조 안전조라 했는데 더 많이 물에 넘어드렸다고 하는 말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고마워서인지! 아무튼 웃음바다였다
1조 한 컷해 주고 나도 더불어
본인의 가슴에 물빽(카메라 보관함- 비닐빽+반찬통+지퍼물빽)으로 이중 삼중 장치를 하였기에 물이나 습기는 스며들지 않았지만 많이 찍지 못해 죄송합니다.
동강래프팅을 뒤로하고 영월 청령포(淸泠浦)로 이동
소재지 :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는 단종이 세조 2년(1456)에 노산군으로 낮추어져 처음 유배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이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휩쓸려, 단종은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이므로, 조정에서는 영조 2년(1726)에 일반민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단종이 기거하던 곳을 의미하는 ‘단묘재본(端廟在本) 부시유지(府時遺止)’라는 비문을 새긴 비를 영조 39년(1763)에 세웠다. 청령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어제시(御製詩)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碑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 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열일곱살 소년을 철벽요새 청령포에 유폐시키고 돌아오는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다.
세월이 약이다.역사는 멀리서 바라보는 드라마다.
단종은 권력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왕위에 올라 항거할 힘도 없는 나이에 이승을 하직 했다.
-숙부! 수양숙부! 날 살려주세요, 죽이지만 마세요.
-전하,신이 신명을 다해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밤낮으로 와들와들 떨다가 죽은 조카, 수양 숙부의 묵직하고 담대한 음성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진다. 同床異夢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송이,험악한 권력쟁투의 바다에 던져진 조각배, 그가 단종이다.
1441년(세종23년)아버지 향(5대 문종) 과 어머니권씨(후에 현덕왕후)의 1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25세인 어머니는 난산으로 홍위(단종의 어릴때 이름)를 낳고 3일만에 죽음.
3일만에 어머니를 여윈 홍위는 할머니 뻘인 세종의후궁 혜빈 양씨에 의해 양육된다. 혜빈양씨는 후덕한 여자였다.
8세,1448년(세종 30년) 세손에 책봉됨, 할아버지 세종은 세손을 무척 아낌, 집현전학자들을 은근히 불러 세손의 앞날을 부탁함,
10세, 1450년 세종 승하, 문종즉위,홍위는 세손에서 세자로 책봉.
12세, 1452년 병약한 아버지 문종이 즉위 2년 3개월만에 어린 세자를 부탁한다는 허약한 고명(임금이 신하에게 하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 단종 즉위
13세,1453년 (단종1년) 10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이릍켜 김종서,황보인등을 피살하고 안평대군을 사사.
14세, 1454년 송현수(판돈녕부부사)의 딸을 왕비로 맞이함
15세,1455년 6월 수양대군이 금성대군 이하여러 종친 궁인,신하들을 유배시킴, 단종은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에 옮김,(재위 3년 2개월)
16세, 1456년 6월 상왕 복위 사건이 발각, 성삼문,박팽년등 집현전 학사출신과 성승 유응부등 사형당함.
17세,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그해 9월 순흥서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됨, 그해 10월 사사되고,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영월 호장 엄홍도가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장,
이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종의 애사다.
반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보는 이의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그 권력이란 게 무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권력이란 말인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운다.
암장된지 60년 후 노산군의 무덤을 겨우 찾았다. 그로부터 15년후 그곳에 간단한 석물을 세웠다.
청령포는 천혜의 요새다. 나룻배가 드나들 나룻터를 제외하면 3면이 깍아지른 절벽이다. 입구를 막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