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회 (안중팔(8)회, 대구팔(8)명) 청암사, 수도암을 다녀오다.
7월16(화) E-마트앞 09:00출발
1) 청암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佛靈山).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58년
창건자 - 도선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58년(신라 헌안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 구산선문동리산문 개조인 혜철(惠哲:785∼861)이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647년(조선 인조 25) 화재로 소실되자 각성(覺性: 1575∼1660)이 허정(虛靜)을 보내 중건하였다. 1782년(정조 6)에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후 환우(喚愚)와 대운(大運)이 중건하였다. 이후 1897년에 폐사되었다가 1900년대 초에 극락전을 복원하면서 다시 절을 세웠다. 응운(應雲)이 보광전을 건립하다 입적하자, 대운이 완공한 뒤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대운이 복원하였다.건물로 대웅전과 육화전·진영각·정법루·일주문·사천왕문·비각·객사 등이 있다. 이중 대웅전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고, 육화전은 옛날에 강원(講院)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또 정법루는 현재 종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석탑과 부도군, 각종 비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은 본래 4층이나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층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군에는 각성의 사리탑과 태감(泰鑑)·지성(智性)의 공덕비가 남아 있다. 그밖에 일주문 안의 사적비와 회당(晦堂)비각·대운당(大雲堂)비각 등이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청암사 [靑巖寺] (두산백과)
회당비각
대운당비각
천왕문
우비천
일주문을 조금 지나치면 천왕문이다. 이곳에서 찻길은 왼쪽으로 새로 난 길로 향하고 걷는 이는 오른쪽 좁은 길로 가도록 했다. 천왕문을 통해 조금 오르면 오른쪽 길옆에 있는 옹달샘을 만난다. 우비천(牛鼻泉) 또는 코샘이다. 청암사는 소가 왼쪽으로 누워 있는 와우형의 형상이다. 대웅전 자리가 소의 뿔이고 이 샘은 소의 코 부분에 해당한다. 본디 소의 코는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하며 마르면 소가 병이 있다고 한다. 청암사 사세(寺勢)가 번창하고 나라가 태평할 때는 우비천의 물이 많이 고여 넘쳐흘렀다고 한다. 그런데 천왕문 앞으로 다리를 놓아 찻길을 내고는 우비천 샘물이 말라버려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이는 찻길을 낸 자리가 누워 있는 소의 목에 해당하는데 목 위로 수시로 차와 사람이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소가 아파 우비천의 샘물이 말랐다는 것. 또한 샘물을 마시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물욕을 경계해야 하는 스님들은 샘 앞을 지날 때 고개를 돌리거나 부채로 가려 외면했다는 말이 전한다
범종각
청암사율원
진영각
정법루
육화료
모진 생명력이 있는 산단풍나무
2) 수도암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북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 수도암. 보물 제307호. 통일신라시대.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59년(헌안왕 3)
창건자 - 도선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2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수도산 (일명 불령산) 정상 부근에 있다. 859년(헌안왕 3)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 도량으로 이 절을 창건하고 매우 기쁜 나머지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조선 시대 1649년(인조 27)에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중창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1649년(광무 3) 포응이 다시 이룩했다.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불타버렸다. 1960년에는 대적광전·약사전·정각암(正覺庵)·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 4명의 승려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조계종 제11대 종정인 법전(法傳)이 와서 크게 중수하여 20여 동이 넘는 큰 가람으로 변모했다.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적광전·약광전·수도선원·관음전·나한전·노전·정각·서전(西殿)·낙가전(洛伽殿) 등이 있다. 유물로는 약광전의 석불좌상(보물 296), 삼층석탑(보물 297) 2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307)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과 초석이 있다. 이 가운데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하며, 금오산약사사(藥師寺), 직지사 삼성암(三聖庵)에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방광했다고 하여 삼 형제 불상으로 부른다.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약왕보살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서 흔치 않은 예이다.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경주시의 석굴암 불상보다 80cm 작으며 9세기에 거창군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의 운반에 고심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했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는 설화가 전한다. 또 삼층석탑은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수도암 [修道庵] (두산백과)
약광전의 석불좌상(보물 296),
수도암을 관람하고 내려와 계곡에서 식사후 계울물에 발담구고는 다음으로 고수돕
17:30수도암 계곡에서 출발 대구19:00도착하여 동구시장 추어탕 먹고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