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원.사.당.재 182

기암문중 추모공원기

기암문중 추모공원기이곳多山里二三五번지孝子嶝은棄菴公府君내외분과그後孫의墓所를現代方式으로移葬하여聖域化하고棄菴門中追慕公園이라이름한곳이다府君의原來묘터인學田洞海日山은산세가秀麗하고浦項바다가내려다보이는東向으로세인들이좋은터라일컫던곳이었다그로부터二百數十年을내려와棄菴公門中의여러形便과時俗의急擊한變化로인하여宗員의일치된決議에따라門中山을他人에게讓渡하였다이에海日山에모셔진八位의移葬을위해土地를物色하던중棄菴府君의配位와아드님諸位그리고後孫여러位의墓所가계신이곳土地를買入하여墓地許可를받아追慕公園을造成하게되었다이公園은멀리三峯이바라보이며가까이저수지가있는戌坐동남동향의陽地바른곳에터를닦았다그리고각각흩어져있던墓所를한곳에모셔와省墓와祭享에번거로움이없게하였다또한앞으로모두三十九位를合窆하여모실수있도록하였으니우리後孫들은더욱더祖上에대한追慕의精誠을다하여훌륭한先祖의後孫된도..

오모재 현판을 걸고

[오모재 현판을 걸고 바라보니 엄숙히 고개 숙여 읍하여 지드라] 一 의사오모재권선생(충열사) 一 충신의사권복흥지려(충렬각) 一 충신의사오모재안동권선생(묘비) 一 유명조선 고충신안동권공(유허비각) 一 오모재공 一 오모재공 선조 一 오모재공 할아버지 읍하면서 고개 숙여 속으로 몇 번을 불러본 그 이름 집에 와서 적어 나열하여 보았다. 오모재(五慕齋)는 처음 당호(堂號: 집 이름)이면서 의사권복흥선조(義士權復興先祖)의 호(號)이다. 어제 오후에 나는 오모재(五慕齋) 현판 걸려고 단계서당(丹溪書堂) 강당(講堂)인 숭의당(崇義堂)에 올라서니 오모산(五慕山) 아래 작은 집을 짓고 오 모재 현판을 걸어 놓고 의사오모재권복흥(義士五慕齋權復興) 할아버지와 서산류 씨(瑞山柳氏) 할머니의 외동아들 지(䥍)와 함께 오손도손 ..

23임란의사 오모재 권복흥의 묘제

임란의사(壬亂義士) 오모재(五慕齋) 권복흥(權復興: 24世)선조의 묘제와 후대 열위 묘제가 12월 3일 경주시 강동면 다산1리 일대에서 마치고, 단계서당(丹溪書堂: 경상북도 문화제자료 제464호 지정된 의사오모재권선생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에 참배하고, 단계서당의 강당인 숭의당(崇義堂) 앞에서 기념 촬영하였다. 초헌관 권용묵(權容黙), 아헌관 권춘득(權春得), 종헌관 권기백(權奇栢)에 의하여 제례를 엄숙히 마치고, 종손권용묵은 “오늘따라 날씨가 매우 포근합니다, 많은 후손이 참석하여 여러분의 협조로 질서 정연히 마치게 되었다.”하고, “충렬각(忠烈閣)에 당시 이조판서 홍양호가 지은 글씨가 세월이 오래되어 판독 불가라 새로 쓰고 새겨 게액(揭額)하였다.” 하고, 금년 묘제 산신 포함 8위 제수를 기암원(..

대연회 유적지답사

대연회 유적지답사 2023년 7월 2일 안동권씨 좌윤공파 대구대연회 36世 혁무편집 귀봉정사龜峰精舍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831 재궁동 (2023년7월2일 답사 1) 휘 德麟(23世: 1529~1573 45세)이고 호 귀봉龜鳳의 묘소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회재문인으로 그 심학 주종을 터득하였다. 1553년 별시문과에 유학으로서 을과에 제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와 예조의 좌랑 정랑을 거처 통훈대부로서 외직으로 나가 다섯고을을 역전하여 좋은 성적이 있었다, 특히 합천과 하동에 유애비가 섰다.1572년에 옥산서원을 창건하고 1573년 졸하니 수는 45세였다. 유고로 귀봉집을 남기고 규장각에 명현록에 들었으며 운곡서원雲谷書院 경덕사景德祠에 배향配享 되고 있다. 호계서사虎溪書社 경주시 안강읍 산대새터길 41-1..

기암원

기암원기암원棄菴園은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235번지에 있다. 호는 기암棄菴이요 휘는 응칠應七이고 시조로부터 30世이고 무진戊辰1748년생이다. 묘는 포항뒤 도암산 정상기슭에 있었는데 토지가 매도되어 부득이 2022년 현 위치로 선장하였다. 죽림선생竹林先生의 11세손世孫이며, 의사오모재선생義士五慕齋先生의 6세손世孫이고, 기암원에 수위首位이며, 학식學識이 높은 문장가文章家이다. 어려서는 죽림선생竹林先生의 순절殉節과 의사오모재공義士五慕齋先生의 순국殉國에 대해 많이 물으며 알려고 하였고, 장성長成해서는 선대 조상을 위하는 사업에 앞장섰다, 영조英祖 기미己未一七三九년에 창건創建된 육대조六代祖 오모재공의 단계사丹溪祠가 영조17년1741년 2년만에 훼철되고 四十一歲 때인 영조正祖戊申一七八八년에 종원宗員과 함께 중건重..

기암원棄菴園

경주기암원棄菴園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235 호는 기암棄菴 휘는 응칠應七 30世 기암문중 추모공원기 이곳 다산리 二三五번지 효자등孝子嶝은 기암공 부군棄菴公府君 내외분과 그 후손의 묘소를 현대방식으로 이장하여 성역화하고 기암문중 추모공원棄菴門中追慕公園이라 이름한 곳이다. 부군의 원래 묘터인 학전동 해일산海日山은 산세가 수려하고 포항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향으로 세인들이 좋은 터라 일컫던 곳이었다. 그로부터 이백 수십 년을 내려와 기암공 문중의 여러 형편과 시속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종원의 일치된 결의에 따라 문중산을 타인에게 양도하였다. 이에 해일산에 모셔진 여덟 위의 이장을 위해 토지를 물색하던 중 기암부군의 배위와 아드님 제위 그리고 후손 여러 위의 묘소가 계신 이곳 토지를 매입하여 묘지 허가를 받아..

경주운곡서원 23년향례

운곡서원雲谷書院의 계묘(2023)년 세일향歲一享이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인 초10일 오전 11시에 향인과 성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 되었다. 운곡서원의 사당 경덕사景德祠에는 안동권씨의 시조 태사공이 주벽主壁으로 제향되고, 동무배향에 좌윤공파의 시조 후 19세 죽림공竹林公 휘 산해山海가 곡배되고, 서무배향에 좌윤공파의 시조 후 23세 귀봉공龜峰公 휘 덕린德麟이 곡배되어 있다. 운곡서원은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이 주벽이므로 당연히 시조 태사공의 서원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의 많은 성씨 중에서 그 시조가 서원에 제향되는 것 또한 안동권씨의 운곡서원이 유일한 예이다. 안동에 태사묘가 있어 권.김.장 3성씨의 시조가 공히 제향되고 있으나 이는 천년의 고제 사묘社廟이지 중세 이후에 유림에서 발의해 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