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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석자비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선생의 묘소에는 보통 묘비가 아닌 석자비(石子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1. 퇴계 묘소의 특징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퇴계 종택 뒷산)비석: 3자 비석에는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후손들에게 “내 묘에는 크게 비석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에 간단히만 새기라”고 유언하셨는데, 실제로 전면에 다음과 같은 10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2. 석자비(石子碑: 3尺碑 )란?퇴계 선생은 생전에 “내 묘에는 큰 비석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로만 표시하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이 거대한 묘비 대신 작은 돌(3尺碑)을 묘 앞에 세워, 검소함과 겸허함을 따랐습니다. 3. 실제 명칭 정리퇴계 선생 묘 앞의 비석을 두고 흔히 “석자비(三尺碑, 높이 3자 되는 비석)”라 부..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 죽재 권혁무 대연회 월례회 날이라 동촌유원지 둑방을 거닐고자한 시간 반 전에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1호선으로 환승한 후, 동촌역 2번 출구로 나와,몸 보신용 복추어탕 식당을 미리 알아두었다. 뚝방길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동촌 해맞이 다리가 보였고,봄이 되면 대구에서 벚꽃 산책로로 유명한 둑방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벚꽃 대신 벚꽃나무 잎사귀 그늘 아래를 걸었다. 바람이 불어왔지만 여전히 덥구나,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가자. 선글라스를 끼고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을 바라보니,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투명한 물 위로 카누를 타는 선수들도 보이네. 멀리 보이는 해맞이공원과 동촌유원지를 바라보며,시간이 여유로워 현재 상황을 카톡에 남기고자 폰을 두드린다. 아침저녁으로..

신라 역대왕 연대표

사기(史記)로 보는 신라김씨(新羅金氏) 왕조사(王朝史)金氏는 신라왕실의 三性(박,석,김) 가운데 하나로 시조 김알지의 7세손 미추왕(신라13대)부터 왕위에 오르기 시작하여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알지의 28세손)때 까지 총 38왕이 재위하셨다.신라를 상대(上代), 중대(中代), 하대(下代)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대는 시조왕(朴赫居世)부터 진덕왕까지 28왕이요 이 중 김씨가 3왕이고, 통일신라의 위업이 빛났던 중대는 태종무열왕에서 혜공왕까지 8왕이요 이 모두가 김씨이고, 하대는 선덕왕에서 경순왕까지 20왕이라 하였는데 이 중 17왕이 金씨 임금이시었다. 왕위김씨명칭휘(諱)성재위서기1 혁거세왕 박61BC57~42 남해왕 박214~243 유리왕 박3424~574 탈해왕 석2457~805 파사왕 박3380~11..

국역 오모모재선생실기 부록

부록(附錄) 단계서당 편(丹溪書堂編) 01 오모재 권복흥(五慕齋權復興)의 생애(生涯) 의사오모재공(義士五慕齋公) 권복흥(權復興, 1555.8.19~1592.4.28)은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多山里)에서 출생하셨다. 공의 자(字)는 중원(仲元) 호는 오모재(五慕齋)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시조(始祖) 고려 태사 권행(權幸)의 후손으로서 24세이고, 좌윤공파(佐尹公派)이다. 증 좌의정(贈左議政) 문정공(文靖公) 휘 희정(希正)의 8세손이고,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시호는 충민(忠愍) 호는 죽림(竹林) 휘 산해(山海)의 5세손이며, 판관 휘 철손(哲孫)의 현손(玄孫)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郎) 행(行) 경릉참봉(敬陵參奉) 휘 평(平)이다. 공의 부인 서산류씨(瑞山柳氏)는 참봉 희춘(希春)의 따님이다...

국역 오모재선생실기 충렬사 고왕록

攷徃錄序(고왕록서) 盖考者.示其不忘之義也。往者.㨿以愈久之幾也。而垂詔後生之雲仍與章甫之有志者.須夫考而紀之.往而毋忘.窮力添扶於千萬年.豈不誠且美哉。대개 ‘고(考)’라는 것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준다는 뜻이고, ‘왕(往)’이라는 것은 아주 오래된 기미(幾微)를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생(後生)으로서 뜻이 있는 자손과, 선비로서 뜻이 있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기는 것이다. 모름지기 고찰(考察)하여 그것을 기록하고, 지나간 것이라고 해서 잊지 말며, 온 힘을 다해 천년만년 동안 덧붙여나가야 하니, 어찌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噫!崇禎紀元後再己未.鄕議齊發.創先祠,號里社.而合享沃溝李公父子.乃庚申春也。褥儀不遵遠旋掇.於翌年辛酉。邦令之新頒.未克辨而與凡同廢之。其後抑鬱之輿情.去久如新者.此也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