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예술한시

구당 유길준선생 시

죽재권혁무 2018. 1. 28. 20:29



구당 유길준선생 시


矩堂兪吉濬先生詩  구당 유길준선생 시
歲暮終南夜 孤燈意轉新  세모종남야 고등의전신
三年遠遊客 萬里始歸人  삼년원유객 만리시귀인
國弱深憂主 家貧倍憶親  국약심우주 가빈배억친
梅花伴幽獨 爲報雪中春  매화반유독 위보설중춘
세월이 덧없어 이 해도 가는 구나,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이루네, 삼년동안 다른 나라로 헤메던 이몸 만리길 이제야 돌아왔노라, 국력이 약함에 근심은 깊어가고 가난때문에 어버이께 걱정 더하네, 매화는 홀로 알아주는 짝! 찬 눈서리 속에 봄을 맞이하도다.


구당 유길준
유길준(兪吉濬,1856,철종7∼1914)은 개화기의 정치가다. 자는 성무(聖武)이고 호는 구당(矩堂)이며 본관은 기계(杞溪)로 박규수(朴珪壽)의 문인이다.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유학하였다.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가 되었다가 사직했다.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도미 유학하다가, 유럽 각국을 순방하고, 1885년 12월 귀국하여 개화파로 체포되었다. 한규설의 도움으로, 1892년까지 그의 집에서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였다. 1894년 외아문(外衙門) 참의, 의정부 도헌(都憲), 내무협판(內務協辦)이 되어 갑오경장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일내각이 붕괴되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육사 출신의 한국인 청년장교들과 쿠데타를 기도하다가 실패하여 오가사와라(小笠原島)섬에 유폐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흥사단 부단장, 한성부민회회장을 역임하고, 계산학교, 노동야학회 등을 설립하였으며, 국민경제회, 호남철도회사, 한성직물주식회사 등을 조직하였다. 1909년에는 <대한문전(大韓文典)>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