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원.사.당.재/안동연원재사

대연회 유적지답사

죽재권혁무 2023. 7. 3. 20:28

대연회 유적지답사

2023년 7월 2일

안동권씨 좌윤공파 대구대연회

36世 혁무편집

 

귀봉정사龜峰精舍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831 재궁동 (2023년7월2일 답사 1)

휘 德麟(23世: 1529~1573 45세)이고 호 귀봉龜鳳의 묘소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회재문인으로 그 심학 주종을 터득하였다. 1553년 별시문과에 유학으로서 을과에 제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와 예조의 좌랑 정랑을 거처 통훈대부로서 외직으로 나가 다섯고을을 역전하여 좋은 성적이 있었다, 특히 합천과 하동에 유애비가 섰다.1572년에 옥산서원을 창건하고 1573년 졸하니 수는 45세였다. 유고로 귀봉집을 남기고 규장각에 명현록에 들었으며 운곡서원雲谷書院 경덕사景德祠에 배향配享 되고 있다.

 

호계서사虎溪書社

경주시 안강읍 산대새터길 41-18 (2023년7월2일 답사 2)

휘 사악士諤(24세) 호 매화공梅窩公 1556~1612 57세 졸하였는데 백부 귀봉에께서 수학하였고 1592년 임란왜란이 나자 37세로 의병을 일으켜 전공으로 훈련원주부가 되어 관군에 배속되었으며 판관과 첨정을 거치면서 사천현감 형조정랑을 지냈다. 1605년에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고 1609울진현령겸강능진관병마절제도위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안강의 호계동에 침류정을 짖고 시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실기가 있어 전하며 1786년 사림이 침유정 유지에 호계서원을 세워 제향하였으며 1859년에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련참찬관 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호계서사에 추배追配에 휘는 찬환瓚煥이요 호는 향오香塢이고 31世이며 문과文科로 증 승정원주서 겸 춘추관기사관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事官이다.

 

노헌魯軒(25世) 종택

경주시 안강읍 두류 1리 (이주마을) (2023년7월2일 답사 3)

휘 응생應生 1571~1647 77歲 호는 노헌魯軒 이고 임란창의壬亂倡義하였고 1605년 증광시增廣時 입격하여 학행學行으로 추천 받아 참봉參奉 직장直長 봉사奉事 평구찰방平丘察訪을 지냈다. 동경지東京誌를 찬술纂述하고, 1623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되고 진천鎭川현감으로 나가 선정善政으로 보감寶鑑을 받고 1647년 77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遺稿가 간행되었다. 

 

한정식

봉산재사鳳山齋舍

경주시 안강읍 구강길 56-13 (2023년7월2일 답사 4)

봉산재사는 휘 수해壽海(1410~1466)이고 사정공司正公이며 호 향일재向日齋의 묘墓를 수호守護하는 재사齋舍이다.

五衛의 7품으로 司正으로 있을 때 세조2년 1456년에 47세로 伯氏 山海와 死六臣의 黨與로 連坐되어 延日의 邊地로 강제이주되었다. 적지에 정착하여 뜨락에 해바라기를 심고 문설주에 향일재라 편액하니 향일은 곧 해바라기로서 선왕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을 우의寓意한 바였다. 1466년에 졸卒하니 수는 57세였다.

(봉산재사 1)

단계서당丹溪書堂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878 (2023년7월2일 답사 5)

서당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켰다가 순절殉節한 권복흥權復興(24世)의 사당祠堂으로 조선 영조英祖15년 기미己未 一七三九년에 창건創建된 단계사丹溪祠가 영조17년 1741년 2년 만에 훼철毁撤되고 영조正祖 戊申一七八八년에 다시 중건重建하였으며 위폐는 경주慶州 향중鄕中에서『의사오모재권선생義士五慕齋權先生』으로 조재造材하여 봉향奉享하여오다가 조선 고종高宗 5年(1868) 때 또 훼철毁撤된 후 단계사는 단계서당으로 바뀌고 강당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1924년에 다시 단壇을 설치하고 또다시 사당을 세워 복향復享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64호이다.

 

(단계서당 2)

기암원棄菴園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235번지 (2023년7월2일 답사 6)

휘 응칠應七은 30世이고 호는 기암棄菴이고 무진戊辰1748년생이며 묘墓는 포항 도음산禱蔭山 정상기슭에 있었는데 계묘癸卯2022년에 기암원으로 선장仙葬하였다. 기암원에 수위首位이고, 죽림공竹林公의 11世孫이며, 오모재공五慕齋公의 6世孫이고 학식學識이 높은 문장가文章家이다.

어려서는 죽림공竹林公의 순절殉節과 오모재공五慕齋公의 순국殉國에 대해 많이 물으며 알려고 하였고, 장성長成해서는 선대 조상을 위하는 사업에 앞장섰다, 영조英祖 기미己未 一七三九년에 창건創建된 육대조六代祖 오모재선생五慕齋先生의 단계사丹溪祠가 영조17년1741년 2년만에 훼철되고 四十一세歲 때인 영조正祖戊申一七八八년에 종원宗員과 함께 중건重建하였으며 오모재실기五慕齋實記도 편집編輯하였다, 오모재선생五慕齋先生의 정여각旌閭閣에 비석碑石을 세울 때와 류씨부인柳氏夫人의 정렬貞烈을 표정褒旌할 때 각각 지은 칠언율시와 오모재공 유사遺事뒤에 붙인 칠언율시가 오모재실기五慕齋實記에 三篇이 실려 전해지고 있다, 公은 유사뒤에 붙인 시詩에 이르기를 증직贈職의 은전恩典을 입지 못해 몹시 원통하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공이 승조이념崇祖理念이 돈독敦篤하고 문장文章과 학식學識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암원 1)
(기암원 2)

*대구대연회 회원님 7월 2일 경주방면 유적지답사에 날씨가 너무더워 참배하시느라 고생하였습니다.

*참배객을 환대하여주신 마을어른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귀봉선생 묘소 산행이 어럽다고 차로 세번이나 왕복하여주신 용률족손님 감사합니다.

*호계사(매와공) 후손님 시원한 과일 잘 먹었습니다.

*귀봉정사, 노헌종택에서 한정식 점심식사 잘 먹었습니다.

*기암원에서 저녁식사 콩국수 잘 먹었습니다.

감사한 마음 일일이 다 표현 못하여 죄송합니다, 잊지 아니하겠습니다.

대구 대연회를 대표해서 혁무가 감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