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예술한시

[스크랩] 시골의 "人倫之大事 "초상집

죽재권혁무 2007. 12. 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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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倫之大事" 중 유일하게 슬픈 날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온 집안전체가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슬픔으로 가득 찬 날이다. 오죽하면 초상집 분위기라고 할까?

우리네 시골 사람들은 예로부터 죽음에 관하여서도 대체로 의연하다. 죽기 전에 자신이 미리 누워야 할 자리를 챙기고 저승 갈 때 입을 수의 마저 챙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평생 그리 길지 않는 삶! 대를 이어 이 땅에 태어나 같은 흙에서 살았고 결국 한 줌의 재가되어 다시 그 흙으로 돌아가니 자연의 법칙과도 너무나 흡사한 삶의 윤회다. 그리고 자손들 또한 죽어서도 이 땅 어딘가서 함께 살아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늘 가깝게 느끼지는 것이다.

집안 어른들이 연세가 많아 自然死를 하게 되면 그것은 호상(好喪)이라 하여 너무 슬퍼만 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틀쯤 지나 빈소를 찾아보면 상가는 문상 온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잔치 집(?)을 방불케 한다. 빈소 주변을 지키는 백관들의 슬픈 표정과 이따금 문상객을 맞이하는 상주들의 곡소리만 가끔 들릴 뿐 집안 전체는 시끌벅적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옛날부터 상주는 부모를 먼저 보낸 不孝子라 稱하였다. 해서 죄인의 입장에서는 슬픔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다. 행동 면에서도 많은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상(喪)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 치러진다. 또 그들에 의해 가족의 슬픔은 위로 받고 그 덕택으로 큰 일을 무난히 넘길 수가 있다. 이럴 때 일가 친척들은 온갖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스스로 무조건적인 도움을 준다. 떠들썩한 분위기도 만들고 상가를 정신없이 만들어 슬픈 초상집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나간다.


어쩌면 이는 喪主의 외로움과 슬픔을 대신하고 大事를 잘 마무리 짓게 하기 위해 슬픔을 함께 하는 연장선상에서 기쁨으로 승화시켜 보려는 우리 조상들의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상객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슬픔을 자아내는 온갖 가지 슬픈 표정과 울음을 보이면서 득달같이 빈소에 달려든다.


때론 상주보다도 더 큰소리로 곡을 질러대며 능히 상주보다도 더 큰 슬픔을 나타내어 누가 보더라도 명약관아 하게 고인과의 막역한 사이임을 강조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고인이 살아 생전에 폭넓은 대인 관계에다 후덕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것을 자식들에게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배려가 되는 것이다.

상주와 맞절을 하며 상문을 주고받을 때 상호간 설명하는 인사는 고인을 대변하는 "바로메타" 이긴 하지만 상주는 알듯 모른 가운데 넘겨 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고인과 연분이 작 던 크던 또는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슬퍼함에는 누구를 따지지 않고 다만 공유하는 것이 시골 문상의 미덕인 것이다.

허긴 가족에게만은 슬피 울면 울수록 고인이 안타까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고 너무 울지 말라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족간의 곡소리는 高, 低, 輕, 重. 에 따라 마치 고인에 대한 효심 경쟁을 하려는 듯 간간이 행해지는 의식 때마다 집이 떠나갈듯이 온 몸으로 울어댄다.

아마도 이날만큼은 상주와 백관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도 모자랄 만큼 문상객을 맞이할 때마다 자신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행동은 차츰 시골 특유의 초상문화에 젖고 젖어 들고 있다.

문상을 마치고 마당으로 내려서면 수많은 문상객들이 음식을 마주하고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고인에 대한 음덕을 기리고 고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호간 사교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 술과 안주 그리고 떡도 좀 더가지고 오라는 고함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릴 때마다 자원 봉사자격인 동네 아낙네의 발걸음은 주막집 주모보다 더 날쌘 걸음으로 날라다 준다.


군데 둔데 화투판이 벌어지고 취기가 오른 문상객은 제법 호기 어린 큰 소리로 마당을 떠들썩하게 하면 간간이 웃음소리와 함께.....누가 보아도 이 장면은 분명 초상집 분위기라기보다는 동네 어른들의 사교장 분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란서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다도시"란 여자가 이 장면에서 이것은 분명 "축제"라고 놀라워했다.
초상집에 축제 분위기라....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보겠다는 복잡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더라도 한시바삐 상주를 슬픔의 늪에서 해방시켜 주려는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처절한 자구책이자 몸부림이 방책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출처 : 맨그랑
글쓴이 : 강마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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