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좋은글중

고양이 양밥

죽재권혁무 2008. 7. 7. 16:06
 

고양이 양밥


동네가 온통 술렁이고 있다. 우리 동네뿐만이 아니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에 그 이웃동네까지 온통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술렁이기 시작한다.

며칠 전에 묵골댁이 도둑을 맞았다. 논을 사려고 어렵게 모아온 돈을 장롱에 넣어두었다가 도둑을 맞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이번에 그 묵골댁이 도둑놈에게 저주를 씌운다고 ‘양밥’을 한다는 소문이다. 양밥중에도 저주가 심하고 강력하다는 ‘고양이 양밥’을 한단다.

‘양밥’은? 보통 3가지 단계가 있다. 작은 물건, 약간의 곡식 따위를 잃어버리고는 ‘고등어 양밥’을 한다. 그다음으로 귀중품을 잃어버렸을 때는 ‘소고기 양밥’을 하는데 고등어 양밥이나, 소고기 양밥은, 고등어나, 소고기에 훔쳐간 사람을 저주하는 주문을 씌워서 땅에 묻는다 한다. 그러면 그 고기가 썩으면서 도둑의 몸도 서서히 썩어 무른다 한다. 다음으로 그 집에 전 재산에 해당하는 돈이나, 소<牛>를 도둑맞았을 때 하는 강력한 저주가 ‘고양이 양밥’이다. ‘고양이 양밥’은 큰 가마솥위에 고양이를 거꾸로 매어 달아놓고는 그 밑에 불을 때면서 김을 쇠어 서서히 죽여 가며 무당이 주문을 외운다 한다. 그러면 고양이는 아주 앙칼진 소리를 내어가며 발악을 하고 자기앞발로 눈을 긁어 상처를 내고 눈에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면 도둑도 고양이처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분했으면 ‘고양이 양밥’을 할까? 도둑은 죽어도 마땅하지 묵골댁이가 어떻게 그 돈을 모았는데? 잘하는 짓이다. 암, 잘 하고말고........,” 이렇게 사람들은 소문을 내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묵골댁에 무당이오고 고양이를 매어달 가마솥을 내걸었다. 고양이는 아직 매어달리지도 않고 그냥 묶여있는데도 벌써 앙칼진 소리를 내어가며 운다. 그런데 자꾸 시간이 지체된다. 고양이를 단다단다 하면서 벌써 몇 시간째다. 그사이에 묵골댁은 몇 번이나 뒤꼍을 돌아본다.

결국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고양이를 거꾸로 매어달고 가마솥 장작불에 불을 지핀다.

묵골댁이는 마지막으로 뒤꼍을 돌아본다.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묵골댁이가 흥분 하면서 하얀 보자기에 싼 뭉치를 하나 들고 나온다. 풀어보니 돈이다. 도둑이 겁을 먹고 돈뭉치를 던져놓은 것이다. 이윽고 가마솥에 불도 꺼지고 고양이도 풀려난다.

이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 도둑질을 했더라도 더 이상 사악 하지 못해서 증거를 갖고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 양밥을 한다는 이야기에 겁을 먹고 돈뭉치를 던져놓은 도둑이나 양밥을 한다고 전을 벌여놓고 뜸을 들이는 주인도 얼마나 순진한 것이 아름다운가?

옛말에 사흘 굶고 도둑질 안 할 사람 나와 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이 사는 동네다 보니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도둑맞는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도둑을 맞는 분한 마음에 ‘양밥’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양밥’을 한다고 들썩 거리다보면 제발저린 도둑이 겁을 먹고 도로 갖다놓는 수도 있지만 가져다놓지 않더라도 실지 ‘양밥’을 하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물건보다도 비록 도둑이지만 인명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양밥을 한다고 들썩거린 뒤끝에는 꼭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누가 큰돈 잃어버리고 양밥을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집안 식구 하나가 몸이 썩어가더라”는 둥 혹은 가까운 누구 가 죽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실제처럼 떠돈다.


한창 젊은 나이인 10대 후반 때였다. 긴긴 겨울밤 친구들이 모였는데 마땅한 놀이는 없고 배는 고팠다. 닭서리를 해먹자는 의견은 모아졌고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화토놀이를 해서 최종적으로 행동대원 3명이 뽑혔다. 뽑힌 친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닭이나 토끼 서리를 해 와야 한다. 말이 필요가 없다 행동이 곧 법이었다.

행동대가 출격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거의 동태가 되어 돌아왔다. 몇 동네를 돌아다녀도

닭이나 토끼가 없더란다. 다만 한집에 가니 곶감을 말리는 집이 있던데 그거라도 해 올 테니 제발 봐 줄라고 사정을 했다. 우리는 밤도 늦었고 해서 크게 인심이라도 쓰는 척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당장에 가서 곶감 몇 줄 걷어 와서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어느 집에서 서리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하필이면 ‘양밥’ 잘하는 점쟁이 집에 곶감을 걷어 왔다는 것이다.

‘큰일 났다.’ 하면서 행동에 나선 아이들을 얼마나 겁을 줘가면서 놀렸던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친구들이 은근히 겁을 먹기 시작 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곶감 없어진 걸 알고 점을 쳐보면 당장에 알 것이고, 도로 가져다 놓지 않으면 양밥을 한다.”는 식으로 얼마나 겁을 주었던지? 실제로 소심한 친구하나는 사흘 동안 그 집 주위를 돌면서 동태를 살폈다 한다. 양밥을 한다는 소문은 없었다. 그 후로 우리는 점쟁이 라도 별수 없구나, 했지만 그 아지매는 알고도 눈감아 줬지 싶다 사흘을 그 집 주위를 어슬렁이는 아이가 있는데 그러나 만약 몰랐다 하더라도 그런 일로 사람 해치는 ‘양밥’ 들먹이지는 않는다.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사악해지고 양심에 털 난 사람들이 많은 요즘 세상에

‘양밥’ 이라는 풍습이 살아나는 것도 좋지 싶다.

죄 앞에 물리적인 처벌만 이루어지다보니 사람들이 사악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잔인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죄 값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시대가 열리고 인터넷이 판치는 세상에 ‘양밥’이 가당키나 하냐고 말 하겠지만 의외로 젊은 세대에도 운세를 믿고 사주팔자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다. 학생들 사이에서 주문을 외워가며 신을 불러오고 미운사람에게 저주를 덮어씌우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양밥’ 이라는 풍습을 되살려 보면 사람들이 좀 유연해지지 않을까?

세상이 각박하고 삶이 메마를수록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빠져드는 수가 많다.

 

- 이진대의 글중 -

 

<1970년대 까지 경북 동해안 지역 실지있었든 사실이야기이다. 다른지역 잘 모른다. 권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