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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집회문화

죽재권혁무 2011. 6. 29. 14:13

  작성자 : 이성원     작성일 : 2001-07-21 오전 9:21     
  제   목 : 안동의 집회문화

 

 용석회장님을 비롯한
수도권청년회회원 여러분의
발전에 축하의 말씀을 보내 드립니다

청년회회원들의 활동에
무엇인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이미 발표한 '안동의 집회문화'란
글을 보내 드릴려고 합니다

보잘것 없는 글이지만
각박한 삶의 현실속에서도
가끔 과거 선인들의 삶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과거와 전통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은 삶의 현장에 하나의
답안을 주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무더운 계절,
모두들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성원 드림
'시도(時到)'했는가?
-안동의 집회문화-



1. 시도와 고유

지금 안동지방에서 장례, 제례, 낙성, 제막 같은 모임에 가면 으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도했는가?'라는 말이다. 생경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통행사에서 '시도'라는 말의 사용은 매우 흔하다. 안동만의 고유용어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찾은 한 사전에 수록된 '시도'를 소개하면,

試圖;시험삼아 꽤함
市道;도로 종류의 하나
示度;계기를 가리키는 눈금의 숫자
矢島;영종도 북서쪽에 있는 섬 이름
示導;나타내어 보이어 지도함
詩道;시를 짖는 방법
視度;대기의 투명도
始賭;처음 봄


[민중서관 국어대사전 이희승 편]


이렇게 많은 '시도'속에 하필이면? 이희승 같은 대가가 빠뜨린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연유로 '始賭'같은, 단어 같지도 않은 단어도 있는데 말이다.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곧 알게된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전통집회와 관련된 용어들, 가령 '단자(單子),' '망기(望記)', '파록(爬錄)', '홀기(笏記)', '상례(相禮)', '도집례(都執禮)', '직일(直日)', '분정(分定)' 등은 어지간한 두꺼운 국어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고유의 문화와 관련된 용어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 연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시도'란 한자로 '時到'라고 쓴다. 풀이하면 '때에 도착함'이다. '등록'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시도했는가'라는 말은 '등록했는가'라는 물음이다. 지금 대부분의 모임은 등록처가 있고 등록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적어도 안동에서 등록이란 말을 듣기는 쉽지 않다. 낙성, 제막, 제례, 장례 등의 모임에서 시도는 그 만큼 일상적 용어이다. 따라서 시도를 위한 '시도소(時到所)'가 설치되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시도용지'가 준비되어 있다. 시도용지에는 주소, 관향, 자(字), 생(生)등을 쓰는 난이 있다. 여기에 내용을 적어 접수하면 시도는 끝난다. 이 때 부조를 전하기도 한다. 시도에 참여한 사람이 자신의 신분, 관직, 직책 등을 쓰고자 하여도 그러한 난은 어디에도 없다.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모임의 주관자는 훗날 이를 엮어 놓는데, 그 이름이 '시도기(時到記)'이다. 시도기는 사후 연락, 답례 등의 자료로 사용된다. 영남의 고가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이 아마 시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그대로 한 시대, 한 사건의 가장 분명한 역사적 사료이다.

시도용지, 시도기 사진

이런 모임은 사실 그 통지서의 양식부터 특이하다. '○○○낙성식', '○○○제막식'등의 글을 쓰지 않고 '고유'라고 쓴다. 그러니까 '○○○落成告由', '○○○先生墓道竪碣告由'등으로 쓴다. 말하자면 낙성식을 낙성식이라 하지 않고 '낙성고유'라고 하며, 묘비제막식을 '제막식'이라고 하지 않고 '수갈고유(竪碣告由)'라고 쓰는 것이다.

고유는 한자로 '告由'라고 쓴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연유를 고함'이라는 뜻이다. 그런 뜻의 말이 관용어로 굳어졌다. 고유에는 '고유문(告由文)'이 있게 마련이다. 고유문이 없는 고유는 생각할 수 없다. 고유문은 집회의 취지, 성격, 연유를 알리는 공적인 글이다. 고유문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은 아니다. 행사의 성격만큼 학식과 덕망을 갖춘 분에게 의뢰하여 미리 준비한다. 그것은 '고유'라고 이름을 붙여 행하는 행사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의 진정한 의미는 조상, 나라, 천지신명 등의 상위개념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자각과 책무와 다짐을 내포한다.

한 예로, 몇 해전 독도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마찰이 빚어졌을 때, 문인들이 집단으로 독도에 가서 고유문을 낭독한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때 듣기 어려운 단어 '告由'라는 말을 사용했고, 또 고유문을 낭독했다. 이처럼 의식에서 고유문은 의식을 의식답게 하는 핵심적 구실을 한다. 따라서 고유는 그 진행에 있어서 진지함과 엄숙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사진-고유통지서,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모임을 현대적 감각에 부합(?)하는 획기적 용어로 바꾸고, 내용 역시 축제적 성격을 띠는 모임으로 전환하는 시도도 볼 수 있다. 통지서부터 다르다. 고유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경남 산청지방의 '남명제(南冥祭)', 강릉지방의 '율곡제(栗谷祭)' 등은 그 명칭부터 자못 새롭다. '남명제'를 총괄하는 '남명연구원'의 사무국장 김경수씨는 한마디로 '남명패스티벌'이라 했다. 남명과 패스티벌?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퇴계와 남명이 다르듯이, 좌도와 우도(조선시대에 낙동강을 좌우로 나누어 안동일원은 좌도에, 산청일원은 우도라고 표현했음)는 분명 그 문화적 성향이 다른 점이 적지 않다.

남명제-사진

몇 해전 여름, 나는 김경수, 정우락, 사재명 등 '남명연구원'의 관계자 여러분과 산청의 덕천서원 앞 '세심정(洗心亭)'에서 밤이 늦도록 수작하며 경상좌도와 우도의 문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는데, 그 때 김경수 국장은 '피해의식도 있겠죠'라고 말했다. 매우 정확한 자기진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진산서숙(晉山書塾)'의 훈장인 이창연씨는 좌도와 우도의 건축물 차이를 "좌도는 오밀조밀한데 우도는 좀 성글다"고 했는데, 그 '성글다'는 표현이 훗날 매우 합당한 말이라 생각되었다.

피해의식이 축제를 이끌어낸 토양인지 모를 일이지만, 내 생각에 안동에서 퇴계 탄신일 날 '퇴계제(退溪祭')라는 타이틀로 패스티벌을 연출하는 그런 일은, 글쎄? 아직은 힘들 것 같다. '제(祭)'라는 표현자체가 '포괄적 축제마당'을 반영하는 현대적 조어(造語)이지만, 전통이 고스란히 보수되는 안동에서는 쉽사리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축제 잔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집회문화가 적어도 안동에서는 익숙하지 않다. 지금 말할 수 있다면, 우도가 진보적 계승을 하고 있다면, 좌도는 아직 보수적 계승을 하고 있다고 나 할까?

'고유문'은 당일 행사책자에 소개된다. 그 책자는 시도를 할 무렵 '시도소'에서 답례봉투와 함께 받는데, 봉투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물품들이 들어있는 것이 통례이다.

*소개책자, 보자기, 담배1갑, 약간의 돈*

이 4가지 정도가 답례의 기본 품목이다. 보답의 예, '답례(答禮)'에 따른 것이다. '과(過)'와 '불급(不及)'은 모두가 결례이므로 간명하게 한다. 담배는 '행초(行草)'라고 하고, 돈은 '행자(行 : 혹은 回 )'라 하여 손님이 떠날 때 주는 인정의 단면이고, 보자기는 도포와 음복 등을 싸기 위한 품목이다. 이미 관습으로 굳어졌다.

고유문 예문 소개 사진


2. 파록과 홀기

시도가 끝나면 다음 절차는 어떻게 되는가? '파록'이라는 순서가 기다린다. 파록은 한자로 '爬錄'이라고 쓴다. 파록은 한마디로 임원선출 의식이다. 임원선출의 어려움을 '파(爬)'라는 한 글자에 집약하여, 그 부담을 줄이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국어사전에는 역시 없으니, 옥편에서 '爬'자를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파록은 당일 집사자의,

"개좌(開座) 아뢰오"!

하는 한 마디로 시작된다. "개좌 아뢰오"는 (회의를 시작하니) "모두 앉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나, 이미 관용어로 굳어졌으며, 고유의 실질적 진행을 알리는 선언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개좌 아뢰오' 이 한마디는 그 고전적 뉘앙스와 더불어 분위기를 일시에 정돈시키는 구실을 한다. 아마도 전통집회에서 '개좌 아뢰오' 라는 한 마디는 처음 목격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말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개좌 아뢰오'는 '이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라는 뜻의 '파좌(罷座 )아뢰오'하는 폐회선언과 함께 종료된다. 최근에는 '개좌 하겠습니다'로 용어를 고치려는 변화의 시도도 없지 않다.

파록은 고유의 최대 관심사이지만, 또한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다. 파록은 나이, 학식, 인품이 두루 고려되는 사회성을 지니기에 '개좌선언'과 함께 아연 참석자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파록의 선임순서는 그대로 참석자의 인간적 면모와 위치를 규정하는 공개적 문서가 된다. 참석자의 위상이 그대로 반영된다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규모의 모임인 경우, 주관하는 단체, 문중에서는 최고 집례자인 '도집례(都執禮), 상례(相禮)'등 좌장의 인물은 사전에 배려한다. 특히 도집례는 거의 한 시대의 인물로 인격, 학식, 나이(德,識,齒)를 두루 겸비해야 한다. 임원 선정은 그 자격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보이지 않는 질서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에 무척 신중하게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파(爬)'의 행위, '록(錄)의 기록'은 그 글자만큼 깊이를 가진다.

이런 절차는 또한 개개인의- 사회적 발신과 관계없이- 행동과 학문, 그리고 인격적 성숙을 게을리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며, 한편으로는 지역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하는 예사롭지 않은 구실을 한다. '인다안동(人多安東)', '문화안동'이 이루어진 원인에 이러한 집회문화의 분위기가 적지 않게 기여해왔음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선고(先考) 상사에 경기도에 사시는 보한재(신숙주) 후손 한 분이 문상을 오셨다. 이 분은 한문에 능하신 60이 넘은 학자이시다. 그런데 우리 집 처마 끝이 걸려있는 '상례파록'을 보고 매우 놀라워 하셨다. 그는 자기 평생에 이런 것을 처음 보았노라 하며, 나에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왔다. 선악을 떠나서 내가 그의 견문 없음에 놀랐지만, 그 역시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음이 틀림없었다. 이런 측면은 경인지역 종친회등의 단체가 이미 종족의 혈연적 친목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의 '비즈니스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안동일원의 지방에는 아직 그 끈끈한 혈연적 순결성을 보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파록은 문중파록과 향중파록으로 구분된다. 문중파록은 문중행사인 만큼 문중사람들로 구성되며, 향중파록은 참석한 향중인사 모두가 파록의 대상이 된다. 문중파록은 사전에 이미 파록이 작성된다. 그러나 향중파록은 그럴 수 없다. 향중파록은 행사전일 이미 집행부의 관계자들이 소집되며, 거기서 임시전형위원이 선출되고, 그 전형위원회에서 회의를 거쳐 파록이 이루어진다.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대립하고 있는 두 문중이 동시에 참석한 경우 '동지착명(同紙着名)'의 거부로 파록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사진>파록

다음에 파록의 한 예를 소개한다. 이는 금년(1999년) 7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거행된 '한국인원폭피화위령비이건'의 고유파록이다. 아마 일본에서 거행한 최초의 한국전통의식이 아니었을까.

A)고유파록

이 행사는 희로시마교민회, 희로시마총영사관이 '위령비이건'에 따른 위령제를 한국전통예법에 의해 거행하고자 안동향교로 간청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안동향교 수석장의(掌議)이며 사회교육원장이신 류창훈선생이 기록한 '참제기([參祭記],안동향교간행)'는 고유의 전 과정이 일기형식으로 소상히 정리되어 있고, 일기 곳곳에 파록에 관한 글이 적혀 있다. 그 중 흥미로운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1999년 7월 18일 曇雨

....저녁에 호텔에 와서 전교와 둘이서 분정(分定) 이야기를 했다. 김영사(金領事)의 눈치를 보니 헌관은 우리 요구대로 초헌관은 권 이설위원장이, 아헌관은 우리 전교가, 종헌관은 김수한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이 하기로 내정한 모양인데, 그렇게 할 경우 김수한 국회의원에게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고 내가 말하니, 전교 왈 " 내가 꼭 헌관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니 굳이 아헌을 고집하지 말고 저들이 일하기 쉽도록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 주는 셈치고, 또 일인이 하지 않기로 했다니 우리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 내가 도집례를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소생 답왈 "그 안이 매우 좋습니다. 전교는 본디 초헌 외는 하지 않는 법이니 아헌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도집례라면 피차의 체면을 살리는 자리니 그렇게 하십시다." 했다.....


'분정(分定)'이 곧 파록이다. 파록의 핵심은 이른바 '5집례'라 하는 상위임원에 모아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7집례'도 거론된다. 위의 기록 역시 파록의 문제가 간단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묘비제막의 고유가 있을 때는 또 하나의 파록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 '수갈파록(竪碣爬錄)'이라 한다.




B)수갈파록


A),B) 두 문서는 양식은 비슷하나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A)문서는 묘비제막식의 파록이고, B)문서는 묘비제작의 파록이다. 따라서 문자가 다르다. 고유파록의 수장은 '도집례'이고, 수갈파록의 수장은 '도도감'이다. 도집례는 집행위원장이고 도도감은 제작책임자이다. 도집례, 도도감이 선출되는 고유가 바로 도회(道會)이며, 향중파록이다. 이런 경우, 이들 직책은 사실 명예위원장, 명예책임자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구분은 이 행사의 엄숙하고도 엄격한 역사적 집행의 공공성을 의미한다. 이 점은 문중행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대규모의 향중파록이 아니면 도집례, 도도감은 선출하지 않고, 상례(相禮)와 도감(都監)으로부터 파록이 시작되고, 이들이 실무를 총괄한다.

그런데 위의 두 문서에서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에 외로이 쓰여 있는 '際'라는 글자이다. '原'이라는 글자도 쓴다. 모두 '끝'이라는 의미의 글자이다. 다같이 '끝'이라는 뜻을 나타내지만 '인원물제(人原物際)'의 규정에 따라 '사람은 원(原)', '사물은 제(際)'로 구분해 쓴다. 그렇지만 안동지방에서는 대부분 구분없이 '際'로 쓴다. 이는 고성이씨에 이원(李原)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도포설명사진

파록이 끝나면 의식이 집행된다. 임원들이 예복인 도포(道袍)를 입고 식장에 대기한다. 이윽고 '찬자(贊者:사회자)'가 장내에 의식의 진행을 선언하면 일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 위치한다. 진행은 오늘날의 '식순'에 해당하는 '홀기(笏記)'라는 문서에 따라 거행한다. 홀기를 읽는 것을 '창홀(唱笏)'이라 한다. 찬자는 창홀을 임원의 행위 전후를 살펴 또렷하고 정중하게 낭독하는 임무를 지니는데, 행사 진행의 전체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역할이 은연중 부여되어 있다.
홀기의 문서는 관.혼.상.제가 다르며, 그 내용은 매우 섬세하여 임원과 참석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지역, 가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마는, 제례홀기의 첫머리는 대개 "獻官及諸執事 序立于壇上 諸執事各就位."식의 글로 쓰여있다. 번역하면, "헌관과 집사들은 제단 앞에 차례로 서시고, 집사들은 맡은 자리에 위치하시기 바랍니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獻官以下諸執事 以次出 禮畢"이라 하여, "헌관이하 집사들은 차례로 물러나가십시오, 예를 마치겠습니다"의 식으로 되어 있다.

97년도 10월, 필자가 고령의 점필제 종택을 예방하니 사당으로 알묘(謁廟)를 시키는데, 그 때 안내하신 분이 도열한 일행들에게 예고 없는 알묘창홀을 하여 매우 숙연하게 했다. 우리들이 창홀에 따라 참배했음은 물론이다. 이 때 창홀은 다음과 같았다.

'국궁-배-흥-배-흥-평신,'

이 창홀의 한자 표기는 이렇다. 鞠躬-拜-興-拜-興-平身. 해석하면, 鞠躬: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히고, 拜: 절하고, 興: 일어나고, 拜: 절하고, 興: 일어나고, 平身: 몸을 편다. 바르고 경건한 자세로 2번 절하는 의식이다. 이른바 '국궁재배(鞠躬再拜)'이다. 국궁재배는 참배(參拜)의 기본이다. 쉽게 설명하면, 국궁은 '차려'에 가깝고 '재배'는 '두 번의 경례'이니, '차려 경례'의 고유명칭이 바로 '국궁재배'인 셈이다. 목례, 거수보다 행위를 보다 크게 하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국궁재배'는 또한 홀기의 기본 요소이다. 따라서 제례홀기의 경우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의 순서에 따른 '국궁재배'와 이를 보좌하는 사회(찬자), 안내(알자), 독고유, 축관 등의 보조거동이 의식의 주조를 이룬다. 다시 홀기의 그 한 부분을 소개하면,

謁者及贊引各引獻官 引詣神位前- -奠爵-俯伏興-少退 -讀祝-俯伏興-引降復位

위의 글은, "알자와 찬인이 각각 헌관을 신위 앞에 인도하여(...神位前),-꿇어 않게 하고( ),-잔을 올리고(奠爵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고 일어나고(俯伏興),-조금 물러나 꿇어 않고(少退 ),-축을 읽고(讀祝),-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고 일어나고(俯伏興),인도하여 내려가 복위하게 하고(引降復位)"로 해석된다. 부. 복. 흥이 곧 '절'인데, 이 모두 구분된 동작으로 기록한 홀기도 많다. 이러한 조목들을 찬자가 천천히 창홀하면 제관들은 여기에 따라 오차 없이 수행한다. 홀기의 전체문서가 대게 이런 식으로 엮어져 있다. 또한 그 문서는 상당한 장문으로 되어 있고, 소요기간 역시 짧지 않다. 오늘의 집회에 연사, 연설이 많다면, 고유는 고요한 침묵이 주조이다. 추모의 정이 흐르는 마음의 의식,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는 침묵의 시간, 이런 분위기가 고유의 맛이고 특징이다.

<홀기사진>

이처럼 전통고유는 시도(회의등록)-파록(임원선출)-창홀(의식집행)과 같은 정연한 순서로 이어지고, 이는 모임을 모임답게 하는 매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를 사람의 일-人事-로 인식하며, 포괄적으로 '예(禮)에 따른다'고 한다.


3. 망기와 단자

그런데 서원의 제례모임, 즉 '향사(享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향사'는 주관할 임원을 사전에 선임한다. 서원관계자들이 규정, 관례에 따라 적임자를 내정하여 통고한다. 파록이 사전에 구성되는 것이다. 서원은 대체로 '분정(分定)'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당일 저녁, 서원강당에 개좌하여 '분정판'(분정판이 없는 서원도 있음)을 내려놓고 시도기를 보아가며 파록한다. 상위임원이 이미 내정되어 있기에 파록은 의식절차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향사는 임원들에게 임명장이 수여되는 특이한 절차를 거친다. 그 임명장을 '망기'라 부른다. 한자로는 '望記'라 쓴다.


분정사진-분강서원 98년도

망기의 문자는 대략 이렇게 적혀 있다.
+-------------------------------+
| 道東書院院長 |
| |
| 望 |
| |
| 幼學 李 龍 九 |
| |
| 戊辰二月十六日 |
+-------------------------------+
<사진>


위의 문서는 초헌관인 원장 망기이다. 원장은 향사의 최고집례자이다. 그런데 망기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하나는 용지의 크기이다. 망기의 크기는 A4용지 9장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임명장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게 크다. 크기가 큰 이유를 상고하기 어려우나 한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중앙정부의 임명장인 교지(敎旨, 紅牌, 諡狀)등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향촌의 발신하지 못한 재야인사들의 분출하는 정치 지향적 욕구를 일정하게 수용, 여과시키는 구실을 하며, 향촌사회의 인간적 질서를 가지런히 하는 효과를 아울러 도모하는 것이다.

망기사진과 시장사진 비교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望'이라는 글자이다. 크기가 외형적 특징이라면, '망'자는 내용적 특징을 지닌다. 망기 전체가 오직 '망(望)' 한 글자에 모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望'자는 독립된 난에 따로 올려 써서, 그 글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부각시켰다. '望'자는 희망, 소망 등에 쓰이는 글자로, 사전적 의미로는 '바라다'는 뜻이다. 그러나 망기에 나타나는 '望'은 보다 많은 포괄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즉 위의 '望'은 "귀하께서 상기 직책에 임명됨을 인지하시고 동시에 그 직책의 임명을 수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긴 뜻이 압축되어 있다. 하나의 글자에 임명의 모든 것을 담았다. '망기'란 임명을 명하며, 동시에 수락을 요청하는 글인 것이다. 그 모든 사연을 '望'이라는 하나의 글자에 집약시킨 문서의 양식이 우리를 주목하게 한다. 문서의 간결함과 상대에 대한 예우가 문화적 측면에서 극도로 축소, 상징화되어 나타났다. 임명장의 양식으로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조상들은 창안하였고 상용화시켰다. 전통집회와 관련된 고유, 시도, 홀기, 파록 등의 양식이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그 가운데도 '망기'의 양식은 임명문화의 차원에서 그 크기만 줄인다면 오늘에도 재현해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령 아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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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育部長官 | | 인사부과장 |
| | | |
|望 | | 망 |
| | | |
| 洪吉童 | | 홍길동 |
| | | |
| 1997年,11월 4日 | | 1997년,5월,5일 |
| | | |
| 大統領 | | 사장 김동식 |
+-------------------+ +---------------------+

언젠가 대통령당선자의 임명장을 신문으로 보고 그 양식의 간명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고위직의 임명장을 지금 다시 교지, 교첩으로 복고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500년 이상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양식과 제도가 있었다면, 선악을 떠나 그 역사성만으로도 이를 좀더 품위있는 방향으로 개선해보고자 노력해보는 일도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공직자가 그 공직의 책무와 무게, 봉직자세와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런 임명문화의 수립은 필요하다. 우리 고유의 훌륭한 임명문화가 실재했기에 그 시행은 정녕 어렵지 않다고 본다. 태권도, 김치, 불고기가 처음부터 세계적인 것은 아니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고, 향사의 주제자를 '원장(院長)'이라고 쓰지 않고, '도유사(都有司)', '상유사(上有司)'등으로도 쓴다. 이런 표현은 최근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오늘날의 서원 실정에 매우 부합된다. 원생이 없는 오늘날 '원장'이라는 표현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서원의 고유기능인 교육과 추모의 역할에서 교육부문은 사라지고 추모기능만 남았기 때문이다. 추모라는 단일행사의 주관자로는 도유사. 상유사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하다.

그런데 망기에는 이를 전하는 부속의 글이 삽입되어 있다. 이 부속의 글을 '고목(告目)'이라 한다. 고목은 고직(庫直: 院奴)의 글이다. 따라서 그 글은 고직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 고목은 임원선출의 사실을 고직의 입장에서 알리는 글이다. 여기에는 임명의 사실과 행사까지의 몇 가지 숙지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고목이란, '임명 사실과 몇 가지 숙지사항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문서로 보면 된다. 고목의 양식은 서원마다 비슷하다.

*봉투의 글: 李 院長主 倍下人 開拓
(해석: 이원장님을 모시는 아랫사람은 개봉해보십시오.)
*내용의 글: 告 目, 惶恐伏地問安爲乎며今般院任遞改時 院長主前薦出爲乎所尼, 望記輸上 爲乎古緣由詮此告課.
辛未年, 九月, 初七日. 屛山書院掌務 乭伊 告目
(해석: 고목, 황공스럽게 문안하옵니다. 금번 서원 책임의 교체에 원장으로 천 출하오소니, 망기를 보내드리옵고 그 연유를 알립니다.
신미년 9월 초칠일, 병산서원장무, 돌이, 고목)
고목-사진
고목은 망기와 비교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망기에 따라오는 부속의 글로써 존재한다. 그러나 고목은 망기를 보완하면서 직책의 무거움과 책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엄연한 문서로서의 구실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직책의 성실하고도 엄숙한 이행을 다시 한번 숙지시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사실 임명이후 향사종료까지 일관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는 망기를 받은 원장이하 임원들의 다음 처신방식이 이를 시사한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에겐 두 가지 처신방식이 있다. '행공(行公)'과 '단자(單子)'이다. 행공은 직책수행의 수락이고, 단자는 고사, 거절이다. 직책수행이 개인적 조건의 제약으로 불가능할 경우 고사를 하게 되는데, 이를 '단자'라고 한다. 대부분의 임명이 행공이 전제된 것이기에, 상신(喪身)이 아니면 단자의 제출은 극히 예외에 한한다.

이런 과정이 완료되면 서원의 제례, 즉 '향사'가 치뤄진다. 행사 당일 심야(새벽 01시 전후)에 거행되는 실질적 진행이 주는 엄숙함과 경건함은 이러한 글 10배 이상의 무게로 우리들에게 뜻밖의 놀라운 문화충격을 줄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두 번 정도의 참관은 그렇게 고약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단자의 예> 사진

내용의 글: 單子 仰瀆, 僉尊鑑, 伏以生之無似 猥 重任不勝恐惶 今享禮將迫累副眷存 身遭服 制果難遵奉 一紙三單玆以仰控 伏乞僉尊函賜改遞  便公私千萬幸甚.
汾江書院 僉座前, 庚午 二月 十日, 鄕末 安相準 謹控
(해석: 단자.우러러 여러분께 알립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중임을 맡기 시니 황공하기 그지 없습니다. 지금 향례가 임박하여 부응해야 하지만 마 침 집안에 상고가 일어나 받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몇 자 적어 알려드리 오니, 여러분께서 교체하여 저로 하여금 공사를 편리하게 해주시면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강서원 제위께, 경오년 2월 10일 향말 안상준 근공.

1999년 12월
가송 「올미書堂」에서 李 性 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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