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원.사.당.재/경주운곡서원

경주운곡서원 23년향례

죽재권혁무 2023. 4. 30. 08:38

운곡서원雲谷書院의 계묘(2023)년 세일향歲一享이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인 초10일 오전 11시에 향인과 성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 되었다.

 

운곡서원의 사당 경덕사景德祠에는 안동권씨의 시조 태사공이 주벽主壁으로 제향되고, 동무배향에 좌윤공파의 시조 후 19세 죽림공竹林公 휘 산해山海가 곡배되고, 서무배향에 좌윤공파의 시조 후 23세 귀봉공龜峰公 휘 덕린德麟이 곡배되어 있다.

 

운곡서원은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이 주벽이므로 당연히 시조 태사공의 서원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의 많은 성씨 중에서 그 시조가 서원에 제향되는 것 또한 안동권씨의 운곡서원이 유일한 예이다. 안동에 태사묘가 있어 권.김.장 3성씨의 시조가 공히 제향되고 있으나 이는 천년의 고제 사묘社廟이지 중세 이후에 유림에서 발의해 세운 공립 모현慕賢기관 개념의 서원은 아니다. 그 후손 죽림공 권산해와 귀봉공 권덕린을 배향한 사림 숭봉의 서원이거니와, 그 연혁沿革을 보면 정조 8년 1784년에 경주에 사는 후손이 태사공의 충의가 종국宗國 신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므로 마땅히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 천년숭보千年崇報의 사당을 세워 정성을 표해야 한다는 뜻을 펴 인근 고을 영해盈海의 후손 종중과 협의하고 안동의 대종중에 통문을 보내 의견을 수렴하여 이곳에 추원사追遠祠를 창건하고 제향을 받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종 5년 1868년에 조정의 명으로 훼철되면서 37년 동안 정향停享이 되다가 광무 7년 1903년에 경주의 후손들이 다시 일어나 사림士林의 공의公議를 환기하여, 훼철된 서원의 남은 주사廚舍 경내의 공지에 임시강당을 짓고 묘우廟宇가 있던 자리에 단壇을 모아 운곡사雲谷祠라는 명의의 단향壇享을 사림 행사로 치렀다. 그러다가 1976년에 현재와 같이 건물을 중건 복원하고 사당을 경덕사, 서원 전체를 운곡서원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당시 건축비는 국내외 후손의 헌성금으로 충당하였는데, 묘우와 내삼문內三門은 일본 거류 후손이 분담하고, 강당은 경주의 종향위從享位 죽림공과 귀봉공 후손이 지었으며 동서재東西齋와 외삼문外三門 및 원장垣墻은 전국의 후손 문중 성금으로 완공을 보게 되었다. 경내에는 봉향위 3선생을 우모寓慕하기 위해 지은 사조암思祖巖 등대嶝臺 위의 유연정悠然亭이 오래된 고 건물로 지방문화재 민속자료제 3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단종조 절신 죽림공의 신원복관伸寃復官과 관련한 압각수기鴨脚樹記가 전하는 갈산공葛山公 종락宗洛의 일화가 서린 거목 은행나무가 경주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자연 동명은 사라곡沙羅谷이라 하는데 일명이 운곡雲谷이며, 작은 절경이 숨어있는 비곡동천秘谷洞天이다.

 

세벽 축시에 봉행하던 예를 시속에 따라 매년 당일 오전 11시에 행함에 금년에도 역시 오전 9시에 모두 모여 시도하고. 10시에 집사분정하고, 감생은 생략하고, 헌관이하 제집사는 경덕사 뜰로 들어가 축문을 옮겨 쓰는 사축례寫祝禮를 마치고 나와서, 11시에 향사를 엄숙히 행한 다음, 음복을 준비하는 동안 기념 촬영하고, 헌관 이하 제관은 정의당 강당에서 상읍례하고, 개좌하여 행공상을 받고, 원장(초헌관) 인사 말씀, 서원운영위원장 인사 말씀 듯고, 관리사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해어졌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행사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몇 사람 남아 정리 정돈 다 하고 정의당에서 커피 한잔할 때 봄비가 촉촉이 내려 만물이 푸르름을 더하여 이 모두가 조상의 음덕이라 생각된다.

 

향례 집사자 명단은

초헌관최병수崔炳秀, 아헌관권혁종權赫宗, 종헌관김정우金正祐

대축진재윤陳載潤, 찬자서원석徐源錫, 알자권용하權容夏

향유사이지한李志漢, 문유사권순가權淳柯 이하생략

운영위원장권오신權五信

2023. 4. 29

36세 혁무 삼가 쓰다.

 

운곡서원 정의당 앞에서 기념촬영

 

파록
파록
집사분정
집사분정
경덕사 앞에서 사축
진설
향유사 창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