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원.사.당.재/경주단계서당

다대포에서 순국한, 의병장 권복흥多大浦 자료

죽재권혁무 2007. 4. 12. 18:26

 

<다대포 응봉 봉수대>

다대포에서 순국한, 의병장 권복흥 多大浦 자료
 

              

           의병장 권복흥(權復興)

 

오모재실기(五慕齋實紀)

권복흥(權復興)

    (1555, 명종 10-1592, 선조 25)

 

                <다대포 응봉 봉수대>

 

   자(字) 중원(仲元), 호(號) 오모재(五慕齋), 본(本) 안동(安東), 부(父) 평(平), 거(居) 경주(慶州)

   전(傳); 목만중(睦萬中) 찬(撰). 공(公)은  1592년 왜구의 침범으로 열읍(列邑)에 와해(瓦解)되거늘 경주(慶州) 인사(人士)들이 의(義)로 단결(團結)하여 일로(一路)를 차단코자 할 때 공(公)이 동사(同事)하기를 자강(自講)하였으나 모두들 이를 받아 주지 않으므로 스스로 가재(家財)를 털어 몇몇 가동(家동)을 거느리고 앞에 나서 부산(釜山)으로 직행(直行)하였다.

  다대포(多大浦)에서 적(賊)을 만나 돌진(突陳) 분격(奮擊)하다가 전사하시고 부인(夫人)이 시체(屍體)를 찾으려 갔으나 찾지 못하고 의관(衣冠)으로 초혼(招魂)하여 돌아 왔다. 140년이 지난 1728년(영조 4)에 증손(曾孫) 이질(以질)이 관(官)에 소원장(訴寃狀)을 올리어 순찰사(巡察使) 박문수(朴文秀)의 치계(馳啓)로 인(因)하여 정려(旌閭)의 영(令)이 내렸다.

   <영남문집(嶺南文集) 2권1책>

오모재후손 12世 혁무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