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예술한시

김삿갓 시

죽재권혁무 2007. 8. 2. 16:52

최남구 동기가 이메일로 보내준 작품

 시선난고김병연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


 

김삿갓이 길을 가다 해도 저물어 어느 부잣집을 찾아 가 대문 앞에서
머슴에게"나는 길 가던 나그네요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으니, 주인어른
한테 나의 뜻을 좀 전해주오."

그랬더니 머슴은 대뜸 머리를 가로젓는다.
"저희 집 초시어른께서는 성미가 워낙 괴팍하셔서 그런 일이라면 저는
말씀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손님께서 주인어른 한테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이런 말까지 귀띔해 주는 것이었다.
"저희 집 영감마님께서는 손님에 따라 대접하는 격차가 매우 심하시옵니다.

손님을 상객으로 대접하고 싶을 때에는 저에게 저녁상을 내오라고
명령하실 때 손으로 이마를 쓸어 보이시고,

중객으로 대접하고 싶을 때에는 손으로 콧등을 어루만져 보이시고,
하객으로 취급하고 싶을 때에는 손으로 수염을 쓸어 내리도록 되어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초시영감에게로 가니 숫제 귀먹거리 흉내를 내며 김삿갓을
내쫓려는 것이였다.

다행히 마음 착한 친구가 같이 있어서 그 친구 덕분에 김삿갓은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때 머슴이 와서 밥상 올릴 것을 물어보는데,
김삿갓은 초시영감이 친구한테 어떤 대접을 할까 궁금해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초시영감의 친구가 저녁을 김삿갓과 같이 먹겠다고 하자 초시영감은 잠시
머뭇거리다

머슴에게 은근 슬쩍 콧등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닌가.
저녁상을 중객용으로 차려 내오라는 암시였다.
그 꼴을 보는 순간 불쑥 반발심이 오른 삿갓이
"초시 어른 이마에 벌레가 기어가고 있사옵니다."하니

"엣..? 이마에 벌레가?"

깜짝 놀라며 이마를 만지자 머슴이 웃으면서 사라지고
저녁상으로 온갖 산해진미로 거나하게 차려져 나왔다.

삿갓에게 속은걸 눈치챈 주인영감은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러나 저녁밥은 푸짐하게 먹었지만 내일 아침 조반상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였다.

다음날 아침 주인과 김삿갓은 조반을 각 상으로 먹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영감 밥상에는 어란자반에 닭고기 무침까지 올라 있건만,
정작 김삿갓의 밥상에는 김치 깍두기에 가지나물 한 접시만이 덜렁 놓여
있을 뿐이 아닌가.

"저 놈의 늙은이가 어제저녁 나에게 속은 것이 분해,
오늘 아침에는 나를 계획적으로 골리고 있구나.
아무리 그렇기로 손님에 대한 차별 대우가 이렇게 심할 수가 있을까."

김삿갓은 속으로는 어지간히 약이 올랐지만 아무 말도 안하고 조반을
깨끗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나서 주인 영감과 작별을 나누고 떠나는 길에 그 집 대문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써 갈겨 놓았다.


천(天)자가 모자를 벗은 대신 점을 하나 얻었고,
내(乃) 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네.

天脫冠而得一點 (천탈관이득일점)
乃失杖而橫一帶 (내실장이횡일대)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 하나를 얻었다 함은 개 견(犬)자를 말함이요,
내(乃)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 함은 아들 자(子)자가 분명하니
김삿갓은 주인 영감을 개자식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양반 체면에 차마 개자식이라고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
시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해 놓았던 것이다.
정말 "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