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휘 철손(權哲孫) 판관공(判官公) 묘소
<공의 비문을 중략하고 기록하다>
공의 휘는 철손(哲孫)이요 성은 권씨며 관향은 안동이고 문과에 급제하여 판관(判官)을 지내시고 자, 호, 생, 졸이 아울러 전하는 것이 없도다. 공은 죽림선생의 넷째 아드님이시고 단종대왕의 이종이시고 배(拜)는 서산유씨(瑞山柳氏)며 부(父)는 사직복규(司直復圭)이다.
경태 병자년(1456년 세조2년)에 죽림선생의 순절하신 일로 자손에게 금고백년으로 전 가족이 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니 이로 인하여 대대로 동도(경주)로 정착하게 되었다. 상상 하건대 그와 같은 어진 조상과 부모의 밝은 교육 아래 당연히 고증할 만한 기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화로 인하여 겨우 살아남은 자손이라 서적을 모두 없애 버리고 전하는 것이 없고 묘 또한 실전하였으니 자손들의 제한뿐만 아니라 우리 종친 각 파 모두가 통탄함이 반 천년이다.
슬프다! 공은 충절집의 세손으로 끝없이 내려오는 가정교육을 모두 이어 받은 즉 공 또한 충의의 선비가 틀임 없다, 대게 충성은 삼강의 으뜸이라, 세상에 만약 바른 말하는 군자가 있었더라면 의당 몇 백연 전에 들어 내여 밝혔을 터인데 오늘날 까지 잠장 된 것은 하늘이 지극히 공평하다는 이치가 혹시 잘못되어 이 같은 기송의 탄식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옛 말에 이르데, 해와 달이 비록 밝으나 엎어 놓은 단지의 밑은 밝히지 못한다 하였으니, 공의 경우가 이와 같다.
현회의 도리가 반드시 시속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면 다시 무엇을 한 하리오! 헌조는 먼 종 후생으로 견문이 모자라고 지식 또한 얕아서 너무 과도하고 진실을 잃어버리는 죄를 범할까 두려워 진다.
이어서 명을 진나니
증조의 불사이군의 절의와 대정의 충렬이여!
국사에 소상히 기록되어 해와 달과 같이 빛을 다투는 도다!
장 현손이 창의하여 공을 세움과
차 현손이 분연 창의하여 순절함이여
대대로 충의의 법도가 연꽃 위에 무지개 같도다.
사람은 다 알지 못함이여,
하늘의 밝음으로 반듯이 상세히 알리로다.
여러 번 화환을 지낸 여열이여!
가을 성소 때는 아무데도 의지할 데 없는 영혼이로다.
어진 자손들의 조상 위한 정성이여!
재단의 봉오리가 언덕같이 높으도다!
아 밝은 영혼이시여!
이제 빙의할 데 있사오니 여기에 평안히 계시고 또 평안하소서,
길이 만세토록 풍광을 더 하소서!
신사년 겨울 종 후생 권헌조 근찬 병서
묘 소재지: 연일읍 달전동 산82번지
도음재사: 연일읍 달전동 452-1
묘사일정: 2007년 음10월 첫째일요일 10시(금년은 음10월2일)
포항 초헌관 권오군씨 강신례
판관안동권공지제단(判官安東權公之祭壇)
배숙인서산유씨(配淑人瑞山柳氏)
동애권헌조 근선병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권혁무본인이 비석에 비치다.
<후손 16世 赫武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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