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자료.행사/방계선조

[스크랩] 부정파 현덕왕후 권씨의 恨 많은 이야기

죽재권혁무 2011. 11. 26. 22:36

 

부정파  현덕왕후 권씨의 많은 이야기

 

 

권왕후는 충남 홍성에서 '권전'의 딸로 태어나서 14세에 세자궁의 후궁격으로 들어가서 세자(문종) 4살 차이로 서로 정분을 가지고 딸을 낳았으나 그 딸은 곧 죽고, 세자빈 봉씨(두번째 세자빈, 첫 번째는 김씨로 퇴출)의 박해를 받았다. 후에 봉씨가 동성애로 퇴출 당하여 그 아비에게 죽임을 당하니(실제는 아비가 먼저 죽었으니 전설 같은 이야기)이 또한 비극이다. 여기서 권씨는 세자빈이 되고 아들(단종)을 낳으나 3일 만에 20대 초반에 절명한다. 묘소는 세종이 며느리로서 지극히 좋아하여 지금 안산시 목내동에 거하게 장사지내 주지만 그 곳의 풍수가 불길하다고 하여 잠시 머뭇거리나 신하들이 무관심하니 그냥 넘어 갔는 데, 세종도 며느리, 아들 복을 지독히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 태종이 그리 많이 사람을 죽이고, 그 자식 세조 또한 그리 무지 막지하게 도살을 했으니, 이씨 조선의 앞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한 것이고 200년 정도로 끝날 것이 그나마 임란 병란의 외환이 조선왕조를 살렸지 않나 생각한다.

 @현덕왕후 묘가 있는 안산시 목내동에서 발굴된 석사자

그 후 '권왕후'는 죽어서 왕비가 되고 폐비가 되고 세조가 묘까지 파헤쳐 없앴고 후일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복원된다.  '단종'시기 그 어머니 아지와 오빠 권자신(아버지 '권전'은 이미 세종때 사망)이 역모로 몰려 전부 죽는다. 기실 권씨 왕후라 하나 본인은 뭐 그냥 세자빈으로 살다 일찍 죽은 것이다. 아들이 왕이 되었거나 죽었거나 이런 건 뭐 다 모르는 채로 말이다(차라리 일찍 잘 죽었지 험한 꼴 안보고서). 그리고 아래 전설은 백성의 마음이 만든 말일 것이다. 死六臣,생육신 문제등 그 만큼 백성의 관심이 컷을 것이다. 그것이 말이 말을 낳고 필요한 것만 남아 '믿거나 말거나' 레전드(전설)가 되는 것이다. 누구 말 마따나 '햇볕에 쪼이면 역사가 되고 달밫에 물들면 전설이 된다.'고 '전설'은 그 이면을 보면 역사보다 더 진실성이 강하다. 이미 검증을 거쳐 엑기스만 남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종묘에 위패가 오르고 왕비로서 문종의 옆에 누우니(실제는 좀 떨어져서 있는 동원이강형) 이 또한 광영이라면 광영이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  

@동구릉 현릉 설명문

이 후 이 한 많은 여인의 전설적인 저주는 다음과 같은 전설로 내려온다.

(과학적, 역사적 근거는 절대 부족하다고 보지만 그 이면의 진실성은 비교적 강하다 하겠다.)

-       내용  -

1.     당사자 수양대군(세조): 저주의 침을 뱉으니 종기가 나 문등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으니 그의  피고름 묻은 속 적삼이 최근 어느 절 부처님 복장에서 나왔다더라. 수양대군 세조 또한 인간이니 아니 괴로웠겠는가? 조선의 왕, 왕비들은 주로 종기로 많이 죽는 데, 생전 제대로 씻기를 하나 그 더운데도 12겹 치마에다가 요즘 같으면 300원 짜리 마이신 한 알이면 다 살릴 것을 말이다. 

@세조의 옷

2.     세조 맏아들(의경세자): 맨날 현덕왕후 귀신이 나와서 목 조른다고 헛소리 하다가 20세에 시름 시름 앓다가 죽는데, 이 사람의 부인이 그 유명한 인수대비 한씨(‘왕과 비의 채시라)이다. 이 한씨 또한 정치적인 여인으로 단종을 죽이는 모사꾼 한명회의 일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여자 또한 왕비가 따논 당상인데 안되고, 자기 아들은 거의 가망 없는 데 왕(성종)을 만들고 드라마 감으로 아주 적당한 인생을 살다갔다. 손자 연산군에게 맞아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현덕왕후 으 저주

3.     세조의 2(예종): 이 되지만 10개월만에 종기가 나서 시름 시름 사망, 현덕왕후의 직접적인 저주 내용은 없으나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고있다. 자식은 4세의 제안대군을 남겨두고서 제안대군은 왕이 안되고 그냥 왕자로 늙어간다. 후에 명종의 이 복형 인종이 3년 만에 죽어서 들썩이더니 결국 그 것의 예고편 같은 것이다. 이 예종은 태종의 외손자 즉 남이장군을 시기하여 죽인다. 요게 또 현덕왕후 못지 않는 한을 만들고 그 한풀이의 결과가 예종 사망의 직접 원인일 수도 있다.

 

4.     한명회의 딸(1): 예종의 왕후: 아들 1명 낳아서 잘나가나 했으나 역시 19세에 사망하고 그 아들도 세자가 되었으나 4세에 죽었으니 현덕왕후의 저주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 초산에서 죽을 확율이 그 전엔 10-20%가 넘었었다. 세상은 공평 한것이 한명회가 왕의 장인 되려고 그리 200% 확실하게 망을 깔아 놨지만 안되는 건 안되나 보다. 칠삭동이가 명문가이나 놀기 좋아하고 좋은 머리로 모사를 부리고 운도 좋아 온 갖 벼슬(영의정 3-4회),호사는 다 누렸고 마지막 죽음도 호사로 왔으나 결국 연산군에게 부관참시 욕을 당하나 이 또한 사후의 일이다. 그 보다 더 한 것은 그 오명을 압구정과 함께 남겼으나, 압구정은 그의 철학대로 부자 땅이요, 탐욕의 땅이 되었다. 

 

5.     한명회의 딸(3): 인수대비 아들 성종의 왕후로 들어가서 아이도 못낳고 19세에 요절하니 '한명회'의 집요한 권력에의 꿈이 좌절된 것이다. 이 한명회가 맏 딸은 삼촌에게 셋째 딸은 조카에게 줬으니 아무리 조선초라고는 하나 아주 패륜적이다. 셋째 딸은 언니를 숙모라 불러야 하고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명회 권력의 힘이란 조선왕조를 통틀어서도 최고 였을 것이다. 제 맘대로 왕 만들고 바꾸고, 벼슬 했다 말았다 하고 딸 2명을 2대 걸쳐 왕비로 만들고 말이다. 그래도 이 모양으로 안되니 옛말에 '자식하고 돈하고 맘대로 안된다.'고 했던가?

@한명회 묘

6.     한명회의 딸(2): 신숙주(숙주나물의 전설, 금방 쉬어 벌이는 나물의 대명사 배신자의 전설)의 며느리가 되나 20세 전에 시름시름 사망한다. 권근과 정몽주, 신숙주와 성삼문, 조조와 유비 그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그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니, 과연 民을 위해 일한자가 누구이고, 民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압구정의 옛 모습 박영효 소유이다가 역적으로 되니 훼손되고 자리 마져도 현대 아파트가 들어 서면서 밀어버려서..

7.     세조의 며느리(연산군 엄마): 윤씨는 원자 연산군을 낳았으나, 사약을 받는 초유의 사태로 결국 많은 참극(사화)  만들고 결국 왕조 멸망의 불씨가 되는 당쟁의 씨앗을 잉태한다. 이 여인을 죽인건 시어머니 인수대비 한씨이다. 그 업보가 자신이 죽인 며느리의 아들(연산군)이 던진 목침에 맞아 시름시름 하다가 이를 바득 바득 갈다가 죽었다. 며느리를 죽인건 권력욕 때문이다. 그래도 중국의 여태후,측천무후.서태후 보다는 조금 덜 악랄한거 같다. 

 

8.     세조의 손자(연산군): 전무 후무한 악덕 군주로 조선왕조의 근본을 흔들어 놓고 자신도 퇴출 되어 3개월만에 30여세로 분사한다. '사모곡'이라기 보다는 여기에도 권력 다툼의 매카니즘이 존재한다.

 

9.     세조의 손자 (성종): 왕조 기반을 잡기는 했으나 역시 모친 인수대비의 치마 폭에서 놀다가 30여세로 일찍 사망했다.

 

10.   세조의 며느리(인수대비): 처음으로 수렴청정이란걸 해서 여자가 나대는 기반을 만들어 왕비 친척이 세도를 하는 전례를 남기고 조선조 후반에 나라를 말아 먹는 기반을 만든 영조비 김씨(‘이산드라마 보면 잘 나온다.)나 안동김씨 세도 정치나 명성황후(민비) 일족이 나라를 팔아 먹는 시발이 되었고, 인수대비 또한 며느리 죽이고 그의 아들 연산군에 의해 목침으로 맞아 죽는다.

 

11.   세조 손자(월산대군): 인수대비 맏아들이요, 성종의 형인데 대저택(현재 덕수궁)에서 잘 먹고 잘 살았으나 아내 박씨는 조카 연산군에게 욕을 당하고 자결하고, 그 처남 박원종 장군이 칼을 빼들고 혁명을 하여 연산군을 몰아낸다.

 

12.   한명회: 잔머리의 명수로 압구정에서 잘 먹고 잘 살았으나 후일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의 형을 당하는 치욕과 후세에 욕된 이름 석자를 기억 하게 한 자이다. 狎鷗亭(갈매기를 희롱한 정자)은 그 뒤 탐욕의 상징(현대아파트 특혜분양 까지)으로 남아 있다. 파주의 황희의 伴鷗亭(갈매기와 더불어 사는 정자)은 길이 청렴과 관용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명회 지석 @ 압구정표지

그리고 한명회 하면 또 한 사람의 권씨가 있다. 한명회의 고우이고 동지이며 조력자 였던,양촌 권근의 손자 권람이다. 이 사람은 그래도 조금 일찍 죽어서 그 이름을 덜 더렵혔다고 볼 수 있다. 사족, 권람은 남이장군의 장인이고, 남이는 태종의 외손자이나 예종의 시기심과 유자광의 모함으로 사망했다.

 @현덕왕후&문종  현릉

현덕왕후의 복권은 종묘에 벼락이 치는 사고가 나자 중종 때 현덕왕후로 복위시켜 드렸다. 자고이래 왕이 되거나 왕비가 되거나 그것은 가문의 영광아니었다. 세종비 청송 심씨 집안은 태종 이방원이 아주 뭐 장인,처남 할 것 없이 멀쩡한 사람들을 그냥 잡아 죽여버렸다. 단종비  송씨는 현덕왕후의 은덕(그냥 귀신이 도왔다는 내용이니 신빙성은 없다. 동대문 숭인동에서 단종이 있는 영월을 향하여 노상 기도하고)으로 그나마 목숨을 유지하여 81세까지 살았다 하나 그녀 또한 친정 집안은 아버지고 오빠고 모두 도륙 되었으니 이래 저래 한 맺힌 삶이었다.

후일 권씨 집안에 또 한 명의 왕비(?)가 있으니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이나, 이 또한 그 부친의 종말이나 남편의 일이나 비극적인 결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현덕왕후 어보와 단종표지.

자고로 은 권력이 아니다 이다. 저울의 '추' 이다.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계 불알 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게 권도(權道) 가 아니다. 지금 권문을 더럽히는 것도 이런 아전 계급의 후예들이 앏팍한 권력에 아부하여 자그만 사욕을 찾는 무리 들인 것이다.

  

 @ 세조가 현덕왕후 묘를 파헤져 시신을 버리니 그 관이 머문 곳에서 우물이 생겨났다는 전설. 안산시 목내동 472-1번지 일진전기 내 위치 

      전일 산동성 조장시 권현비묘(영조 성락제의 제2, 조선의 세조와 같은 인물 조카 건문제 죽이고 명나라 황제로 등극)이야기에서 말한 바와 같이 , 동구릉의 현덕왕후의 묘에 참배하고 그 원혼을 위로 하고 을 조금이라도 다독여 준다면 발복의 행운이 따를 것이다

   TIP 인수대비 한씨는 한확(누이 덕에 동사무소 직원에서 영의정 까지 갔고 당시 세계 GNP60% 차지한 대명제국의 영조 성락제의 처남)의 딸이니 그 끝발이야 상상을 초월하고 한확의 누이 한비는 권비가 죽을 쯤 영락제의 후비로 들어가서 호강을 누리다가 영락제가 60몇 에 죽으니 20여세로 같이 순사 당하니 그 정경은 눈을 뜨고 못보겠다했다. 한비는 내시가 내라린 비단끈을 목에 걸고 '어마님 어마님 나는 가오 나는 가오 이팔 청춘에 이역만리에서 나는 가오.' 비통히 부르짖었다 하다. 이 장면은 韓비의 몸종 만은 살려서 조국으로 보내라는 韓비의 간청으로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 하나 TIP 수년전 중국 운남 원모란 시골에 가다가 택시 운전수가 '황제'가 먹은 기가막힌 '애저(새끼되지 요리)'가 있다기에 막상 100元(13,000원)이란 거금을 더 주고 갔더니, 맛이 그렇고 그래~ 앗 속았다 생각하고 '야 임마 이 시골에 무슨 황제가 있냐? 방방 뜨니 좀 있다 어떤 할배를 데리고와서 설명하기를 ..여차 저차 하는 데.. 그게 '건문제(한국의 단종)'였다...

   아~~ 아직 사우쓰 코리아(한국)의 현실은 이런 인수대비나 한명회 같은 전통이 내려와서.. 그런 놈들만 득세 하는 가 보다. 

 @OCheeryKHAN

출처 : 安東權氏
글쓴이 : 權五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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