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자료.행사/문중행사

능암계 안동, 예천지역 탐방

죽재권혁무 2014. 5. 8. 16:31

능암계

2014년 5월2일~5월3일

능암계 계명은 능동재사, 봉암재사 양소를 추모하기 위하야 능암계라 칭한다.

처음에는 경주, 포항, 울산지역에 14곳 문중이 가입였으나

지금은 8문중이 현존하고있다.

두류문중, 국당문중, 두동문중, 홍갑문중

송정문중, 구길문중, 연일문중, 전곡문중

능암계정기총회의는 매년에 1회 음3월말일 경에 개최하며

장소는 지역윤번제이며 금년에는 연일문중에서 거액을 마련하여

1박2일로 선대 원院, 사祠, 당堂, 묘소답사墓所踏査하기로하였다.

 

관광버스로 포항- 안강- 경주-동대구IC (참석인원25명)

나는 동대구IC에서 승차하여 안동태사묘우로 향하여 오전10시경에 출발하여

태사묘우에는 11시10분에 도차하였다.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 안동태사묘(安東太師廟)의 유래(由來) >

 태사묘는 안동시 북문동24-1에 소재하여 대지 1229평, 지상에 태사묘우(太師廟宇),숭보당(崇報堂),경모루(景慕樓),동재(東齋), 서재(西齋), 주사(廚舍), 전사청(典祀廳), 안묘당(安廟堂),보물각(寶物閣),차전각(車戰閣) 등 기념물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안동 왕건세트장 관광)을 도와 신라를 공략한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퇴치한 삼태사는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 휘(諱) 김선평(金宣平), 휘 권행(權幸), 휘 장정필(張貞弼), 즉 안동김·권·장씨 시조를 보시고 춘추중월중정일(春秋仲月中丁日)에 향사(享祀)하는 사당(祠堂)이다.
권태사공은 원래 신라 종성김씨(新羅宗性 金氏)였는데 기미(機微)에  밝아 권도(權道)로서 왕건 태조를 도왔으니 권도권(權道權)으로 사성(賜性)을 하니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이다.
 고려 성종 2년 983년에 부사내(府司內) 삼공신묘를 창건하였다.  삼공신위판(三功臣位版)은 부사에서 객사로 옮겨 모시다가 중종 37년(1542년) 강릉인 김광철이 안동 부사로 재임시 처음으로 묘우(廟宇)를 이 자리에 세웠다.
당시(當時) 정조,단오,추석,동지의 사절사를 봉행하였으나 1585년 당시 도유사(道有司) 송암 권호문의 주창으로 춘추향사(春秋享祀)키로 결정, 지금에 이르며 1608년 11월 유사 권중상,권함,김태,장흥효께서 삼공신 위판을 개제주(改題主)하였으며 권오(權晤)가 쓰셨다.
1613년 7월에 경상감사 권반 경주부윤 권태일이 구묘(舊廟)를 증축하고, 삼공신묘를 태사묘로 개칭하고 태사묘 현판은 권복흥이 서(書하)다. 경종 원년1721년 3월 16일 안동서문에서 일어난 대화재시에는 부사(府司)도 탔으나 묘우만은 보전되어 있었다. 즉후 삼태사공 후손과 향당(鄕黨)의 덕망있는 자와 공논(公論)하여 중건공사를 착공 1년 만에 옛모습으로 완공하였다.
1950년 경인난(6.25동란)때는 묘역이 폭격으로 소실되었으나 후손의 성력으로 13년에 걸쳐 1963년에 완전복원하였다.
임진란때 묘직(墓直)인 안금이(安金伊)가 후손도 하지 못한 삼태사위판을 길안면 국란 계곡 깊은 동굴에 모시고 3년이나 봉안(奉安)하다가 평란(平亂)후 환안(還安)하니 나라에서 그 뜻이 갸륵하다 하여 첨지(僉知)의 벼슬을 내리고 경내 일각에 안묘당(安廟堂)을 세우고 봉안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경인란시에는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별유사(別有司) 장봉섭이 삼태사 위판을 성곡동 장씨 광풍정(光風亭)에  이안(移安)하였다가 익년 8월13일에 능동 안동권씨 재사 보판각으로 이안하고 매년 춘추 향예를 봉행하여 오다가 1953년에 3성 후손이 중건 위원회를 발족하여 후혼들의 겅금으로 새로 중건하니 묘우 숭보당(崇報堂), 전사청(典祀廳), 동서재(東西齋), 안묘당(安廟堂), 주사(廚舍),공사(工事)를 마치고 1958년 9월에 삼태사공 위판을 환안봉안(還安奉安)하고 고유(告由)하였다.그 후 1963년에 보물각(寶物閣), 경모루(景慕樓)도 이어 준공하였다.
중건 후 수 십여년 간에 퇴락으로 삼성후손들이 걱정하여 오던 중 도유사(道有司) 김중한이 입재(入齋)하여 묘우 및 경내 건물 보수관계를 태사묘관리위원들과 협의하여 관계기관과 절충한 결과 국가 보조금으로 1993년부터 3년에 걸처 묘우를 비롯하여 경내건물과 담장을 깨끗이 일신하였다.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안동 태사묘(太師廟) 알묘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권행(안동권씨시조의 위폐)

이날은 촬영을 못하여 전에 행사 시 촬영한 위폐가 있어 같이 올리다.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장정필(안동장씨시조의 위폐)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김선평(안동김씨시조의 위폐)

 

서재

 

승보당

 

동재

 

경모루

 

서재에는『안동권씨대종원연락소』가 있다.

 

보물각

 

주사(주방)

 

안묘당

 

첨지순흥안금이지신

 

안중 할머니 위폐대신 백마

 

안묘당중건기

 

백강 장봉섭 공적비

 안동권씨 대종원연락사무소 관리장 권영목

 

 다음은 시조태사공 묘소로 향하였다.

 

안동권씨 시조태사공

휘는 고려사의 자로 되었다. 본래는 김씨이며 신라의 종성이었다.

태사공: 경순왕 3년 기축(929)10월에 견훤이 고창군를 포위하였을 적에 공께서 김선평,장정필과 함께 의를 주창하여 고려 태조를 도와 경인(930)년 정월에 견훤을 병산에서 물리치니 고려 태조과 기뻐하여 이를기를 은 능히 기미에 밝고 도에 능통하다 하고 권자로 성을 하사하고 공신으로 봉하였으며 작위를 주어 대상이 되시고 삼한벽상 삼중대광 아보공신 태사에 오르셨으며, 군을 승격하여 안동부라 하고 식읍토록 하였다. 안동부민들이 공의 위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드리고 김공과 장공을 배향하였다. 태사묘의 향례일은 28월 중정일

 

묘소: 안동군 서후면 천등산 남쪽 조화곡 자좌이며 도선이 점친 곳이다. 그러나 중간에 실전되었는데 이조 성종때 17세손인 평창군사 ""이 묘소를 찾은 뒤 실전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그 밑에 장사지내도록 하였으며 24세손인 ""가 신도비명을 저술하고 고종 신축(1901)년에 32세손인 "중현"이 신도비를 개수하였으며

서애 "류 성룡"이 묘갈명을 저술하고 참의 벼슬을 역임한 "이 경휘"가 글을 썼으며 미수 "허목"이 전서하고 판서인 "조 복양"이 비음기를 저술하고 퇴계 이문순공 ""이 증수기를 저술하고 후손인 참판 "응정"이 묘정비문을 찬술하고 후손 군수인 "성원"이 행장을 저술하였다.

경인(1950)년의 사변때 묘우가 소실되었고 무술년에 중건 능동의 묘사일을 매년 한식일과 10월 중정(음력 10월중 ""자가 두번째 드는날)

 

운곡서원: 정조 병오(1786)년에 추원사를 경주 운곡에 세웠으나 고종 무진(1868)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된 뒤 병진년 중건을 도모하였으나 사람들의 공논으로 운곡서원에 현판으로 달았다. 경주 운곡서원의 향례일은 3월 초정이다.

 

 안동권씨 능동재사

고려 삼태사 중의 한사람이자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마루·방·곳간 등 16칸을 처음 지었고, 숙종 9년(1683)에 누각 7칸을 더하여 지었다. 영조 19년(1743) 불로 건물이 모두 불타서 다시 지었고, 고종 33년(1896)에 다시 불이 나서 당시 70여칸이던 건물 중 임사청·전사청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불타서 다시 지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에 높은 축대를 쌓아 문루인 '추원루'를 세웠고, 누문 안쪽에 정면으로 재사 큰채가 있다. 큰마당을 둘러싸고 양 옆으로 안사랑채인 '동재'와 헛간채인 '서재'가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31세손 在衡書(재형서:1854~1934 )

능동재사 전경(묘소 올라가는 길에서)

 

안동권씨 시조묘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권행묘

(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權幸墓)

上: 제일 위의 시조의묘는 권옹이 시조묘 지석을 발견하여 무덤을 만들고

 

中: 그 아래 권옹의묘는 돌아갈 적에 권옹이 자기 묘를 그 아래 써 달라고 부탁하여 묻었다.

권옹은 아들 둘이 있지만 평안도 이주하여 사위 유소(유종혜 손자)에게

재산과 묘 관리를 맞겼다. 그로인하여 오늘날까지 외손봉상을 하고있다.

 

下: 또 그 아래 류중영의묘는  맏아들 겸암(謙菴) 둘째아들 서애류성용이다.

 

 

 

랑중공단소 참배

 

 

 

청도 봉암재사앞 랑중공 유허비를 옮긴 유허비이다.

 

 

 

 

 

 가일마을 입구

 

시습재 

 

 환와서실

 

 

 

 

 

 

 

 

 

초간정사

 

 

 

예천권씨 종댁으로 들어가고있다

 

 

 

 

 

 

 

 

 

 

 

 

 

 소백산 용문사

 

 

 

 

 

 

 

이날 답사는 모두마치고 숙소 수안보온천랜드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