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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사벌왕릉(尙州 沙伐王陵)

죽재권혁무 2007. 6. 2. 15:45

 

도남서원 답사 후 돌아오는 가까운 길목에 사벌왕릉 답사(2007.5.30)

 

이곳에 펼쳐진 넓은 평야지대는 이 곳에 정치집단이 형성되기 용이한 지역이었음을 말해 준다. 문헌에 나타나는 정치집단의 이름은 사벌국인데, 이 사벌국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위치하였던 삼한 소국 중의 하나로, 일명 사량벌국이라 고도 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나라는 본래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점해왕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였다 한다. 그러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였다.

그 뒤 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 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어 사벌국 이라 칭하고 11년간 이지

역을 통치하였다. 그 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아 929년 패망하였다.

 

 사벌국왕지능

 

 

 사벌국왕신도비

 

   사벌왕(沙伐王) 신도비문(神道碑文) 해설 상산은 옛날 사벌국이었다. 세상에 전하기를 그 나라 임금의 성은 박씨요, 휘는 언창이니 신라왕자로 그 묘는 고을 동쪽 15리 이사벌 둔진산 아래에 있다. 남쪽으로 성을 쌓았던 흔적이 있고 글씨가 새겨진 돌과 조각도니 주춧돌ㅇ 사방에 흩어져 바둑돌 같은지라. 유민(遺民)들이 오히려 손으로 가리켜 이르기를 그 도읍터라 하였다. 묘 곁에 석탑과 석교가 있는데 그 다리는 그때 임금이 난리를 피하였던 곳이라 일컬어 온다. 그러나 세대가 오래되고 멀어지니 드디어 사적이 묻혀지게 되었다. 자손은 그 근방에 살았으나 초목을 금하지 못하였다. 조선 현종 무신(1668년)에 지주(고을의 원님) 이초로가 꿈을 꾸니 옥대를 띤 신인(神人)이 호소하는 형상이 보였다. 이에 고을의 노인들을 찾아 널리 물어보고 그 영역을 수축하는데 향인이 또 그 탑을 ?어 버리려다 뇌우가 크게 일어난지라 놀라서 그대로 그만 두었다 한다. 순조 정해(1827년) 가을에 편석을 탑 가운데서 얻었는데 “사벌묘”의 네 글자가 새겨있었다. 이에 모든 자손이 모여서 묘소를 높이 사초하여 제사를 지내고 모두 한결 같이 말하기를 문헌의 증거가 없어 선조의 사업과 생졸(生卒), 비필을 비롯 상고할 수 없으나 홀로 이렇게 영험하고 신기한 사적이 1천여년후에 나타났으니 마땅히 사실을 기록한 비석을 세워 길이 후세에 남겨야 한다.
은진 송병선 씀

 

 

삼층석탑

 

<竹齋 權赫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