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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택(鶴峯宗宅)

죽재권혁무 2007. 8. 14. 18:04

 
이 건물은 학봉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번지에 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의성김씨 학봉종택(義城金氏 鶴峯宗宅)은 지대가 낮아 자주 침수된다 하여 학봉의 8대손 광찬(光燦)이 1762년에 이곳에서 100m 떨어진 소계서당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고 한다.

1964년에 종택을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이 때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소계서당으로 쓰도록 하였고, 소계서당을 개조하여 종택의 사랑채로 꾸며 사용하였다. 비교적 평탄한 대지에 서남향으로 자리잡은 이 종택은 근년에 지은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좌측에 정침과 그 뒤쪽에 사당이 있고, 마당 건너편에는 근년에 지은 운장각과 정자가 서북향으로 나란히 앉아있다. 정침은 ㅁ자에 양익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최근 좌측에 직각으로 ㅡ자 아래채를 달아내어 사(巳)자형으로 바뀌었다. 정침 정면 우측에 사랑채가 돌출형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마루가 2칸, 방이 2칸, 작은 사랑방 2칸, 1칸 책방을 놓아 안채의 우익사에 연결하였다.


안채는 우측 3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좌측에는 2칸 안방을 두고 끝에 부엌을 놓았으며 그 앞쪽의 좌익사는 식당 등으로 내부가 개조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상부가구는 5량가이고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올렸다. 정침의 오른쪽 뒤편에는 3칸의 사당을 배치하고 토석담장을 둘러 별곽을 이루고 있다.

 

 

 

 

 

 

鶴峯宗宅(학봉종택)  안동시 서후면 금계동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

 

 

의성김씨 이야기


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다 순국한 학봉 김성일 집안.
이 집안의 애국정신은 그 직계후손들과 정신적 자식인 제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전해진다.
학봉의 퇴계학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제자이자, 학봉의 11대 종손인 김홍락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해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명이나 배출했고, 학봉의 직계 후손들 중에서도 무려 11명이 훈장을 받았다.

퇴계 학풍 이어온 항일 독립운동 명문가

최근 미국의 어느 동양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의 유교문화권 국가들 가운데 유교문화의 요소를 아직까지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 다음에 일본이고 다음이 중국이다.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유교문화의 영향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유교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어디인가?

충청이나 호남보다는 영남 지방이고 범위를 더 좁히자면 그 중에서도 안동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일대에 밀집해있는 수많은 고택과 종택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안동 일대에 이처럼 유교문화가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퇴계선생의 영향이 크다. 주자성리학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한 인물로 볼 수 있는 퇴계는 오늘날까지 영남과 안동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마음속의 어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퇴계의 양대 제자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과 서애 유성룡이다. 안동 일대의 명문가는 거의 퇴계에 연원을 두고 있지만, 퇴계 다음으로는 거의 학봉, 서애와 직 ·간접으로 연관돼 있을 만큼 두 사람의 영향력이 크다.

퇴계의 양대 제자, 학봉과 서애

이 두 제자는 당연히 개성도 달랐다고 전해진다. 서애가 복잡한 현실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데 주력한 경세가(輕世家)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면, 학봉은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의리가(義理家)로서의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유학이 추구하는 양대 날개가 바로 경세와 의리인데, 서애와 학봉이 각각 이를 대표했던 셈이다.
학봉 집안과 서애 집안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고택으로도 유명하다. 학봉 집안의 고택을 보면 학봉의 아버지인 청계공이 살았던 내앞[川前]의 대종택과 그리고 학봉 본인이 살았던 학봉종택이 유명하다. 한 집안에서 알려진 종택이 둘이나 있는 것이다. 서애 집안도 그러하다. 하회마을에 가면 서애의 아버지가 살았던 양진당(養眞堂)과 서애 본인이 살았던 충효당(忠孝堂)이 유명하다.

한 집안에 종택이 여럿인 집안은 학봉과 서애 말고도 안동일대에 많이 있다. 집안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 살았던 대종택이 있고, 여기서 다시 갈라져 나간 파종택(派宗宅, 소종택)이 여러개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종택과 파종택이 동등한 비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집안은 학봉의 종녀가 두 명이나 서애 종택의 종부가 되는등 오랫동안 특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학봉종택과 서애종택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서애 종택인 충효당이 세간에 더 많이 소개 됐다. 충효당이 있는 하회마을이 몇 년전 영국 여왕이 다녀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 졌기 때문이다.
금계 마을에 자리잡은 학봉종택(風雷軒)은 영남 일대에서는 명성이 높지만 전국적으로는 충효당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학봉종택은 역사적으로나 풍수적으로나 그리고 종택이 지니고 있는 품격으로 볼 때 안동일대를 대표하는 고택중의 하나이다.

학봉 김성일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죽은 선비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인물이었다. 임금 앞에서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강직함과, 임란 전 일본에 통신사로 갔을 때 일본인들에게 보여준 조선 선비로서의 자존심과 격조 있는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영남과 안동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竹齋 權赫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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