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좌윤공파 연원재사(安東權氏佐尹公派 燕院齋舍)
1. 유래
이 재사는 안동권씨 좌윤공파 파조 좌윤공(佐尹公) 지정(至正)의 후예로서 고려조의 인물인 지후공(祗侯公) 혁(奕)을 비롯하여 그 아드님인 희경공(僖敬公) 용일(用一), 증손자인 퇴산공(退山公) 치(輜)와 그 배위 분의 묘제를 위해 정조 4년(1780)에 창건되었다. 그 후 고종 병신(丙申, 1896)년에 화재를 당하여 불타고 남은 건물을 수리하였으며, 정축(丁丑, 1937)년에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재사를 창건할 당시에는 고위(考位) 3위(位)와 그 배위의 묘제를 수행하기 위해 건립된 재사였으나 근래에 들어 지후공의 손자인 문정공(文靖公) 희정(希正)과 배위인 언양김씨(彦陽金氏)의 묘사를 이곳에서 준비하게 되어 묘사의 대상은 총 9분으로 늘어났다.
재사는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의 잣밭골[栢田谷]에 있는데 이곳은 우리에게 제비원미륵불[泥川洞石佛]로 유명한 제비원[燕院]의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재사의 명칭을 제비원이라는 지명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다. 잣밭골은 입구가 동에서 서쪽을 향해있는 깊은 골짜기로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옛날에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고 하여 잣밭골로 불렀다. 이곳 골짜기의 산자락과 산등에는 연원재사와 관련 묘소가 분포되어 있고, 인근의 골짜기와 오이산(烏耳山)에는 안동권씨 부정공(副正公, 通義)의 6대손으로 단종대왕의 외조부인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의 묘소와 재사인 오이재(烏耳齋)가 있다.
연원재사를 이해하기 위해 『영가언행록(永嘉言行錄)』과 외후손 송준필(宋浚弼)이 찬(撰) 지후공 묘갈명(祗侯公墓碣銘) 등을 살펴보면 관련 인물의 세계(世系)와 이력은 다음과 같다.
안동권씨 15파 가운데 6번째 파에 해당되는 좌윤공파(佐尹公派)는 태사공(太師公, 幸)의 10세손인 좌윤공 지정(至正)을 파조로 한다. 파조의 행적과 관련되어 전하는 기록은 호장(戶長)을 지낸 통(通)의 장남으로 고려 때 호장으로서 좌윤(佐尹)을 지냈다는 것 이외에는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다. 좌윤이란 일반적으로 고려 공민왕 때 삼사(三司)에 딸렸던 종3품의 벼슬을 지칭하며, 조선시대 때는 한성부(漢城府)에 설치된 종2품의 벼슬을 뜻하는데 이때는 좌윤(佐尹)이 아닌 좌윤(左尹)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공이 받은 좌윤은 고려 초기 태봉(泰封)의 관제를 답습해 광평성(廣評省)에 두었던 벼슬이 향직(鄕職)으로 변형된 것으로서 6품에 해당하는 것이다.
좌윤공의 아들은 세위(世位)인데 정용위 별장(精勇衛別將)을 지냈고 손자는 양준(良俊)으로 별장부정을 지냈는데 복야공(僕射公) 수홍(守洪)의 사위이다. 증손인 수(粹)에 이르러 문과에 급제하고 두 아들인 혁(奕)과 견(堅)을 두었는데 혁은 문과를 하여 중문지후(中門祗侯)가 되었고 견(堅)은 낭장으로서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추증된다. 이후 공경대부(公卿大夫)가 계출(繼出)하여 문호가 크게 번창하였다.
묘사의 대상 가운데 제일 윗대 분인 지후공 혁의 이력을 살펴보면 공은 태사공의 14세손이며 좌윤공의 5대 종손이다. 고려 충렬왕 4년(1278)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종6품직인 중문지후에 이르렀다. 그 밖의 기록은 미상이고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층되고 또한 영가군으로 추봉(追封)되었는데 이는 조선조에 들어와 그 증손인 진(軫)이 정승으로 영달하였기 때문이다. 배위는 동종(同宗)의 영가권씨(永嘉權氏)로서 예빈동정(禮賓同正) 열(烈)의 따님이고 묘소는 연원재사가 위치한 오이산에 경향(庚向)으로 합폄(合窆)되어 있다.
희경공 용일은 지후공 혁의 독자로 관직은 낭장(郎將)을 지냈으나 보서(譜書)에는 고려조의 문하시중과 추밀원사의 직함이 보인다. 공이 타계한 후 조선조에 들어와 손자 진이 귀하게 됨에 따라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되었으며 희경(僖敬)의 시호를 받았다. 배위는 초배(初配)가 정부인(貞夫人) 야성송씨(冶城宋氏) 광계(光啓)의 딸이고, 재배(再配)는 정부인 영가권씨 중문지후 빈(份)의 딸이며 묘소는 안동시 북쪽 제비원의 서쪽 언덕에 병향(丙向)으로 있다. 아들은 감찰(監察) 희정(希正)과 중랑장 희백(希伯)이 있다.
문정공 희정은 희경공 용일의 아들로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관직은 감찰규정(監察糾正)을 역임하였다. 감찰규정이란 고려 때 감찰사(監察司)에 딸린 종6품 벼슬로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고친 이름인데 조선조의 사헌부 감찰과 같은 관직이다. 공의 사후에 3자인 문경공 좌의정 진이 귀하게 됨으로 인하여 벼슬이 의정부 좌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靖)의 시호를 받았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언양김씨(彦陽金氏) 판도총랑(版圖總郞) 김해부사 가기(可器)의 딸이고 슬하에 7남3녀를 두었다. 아들은 경산현령 곡(轂)․감사 여도(輿道)․좌의정 진(軫)․현감 지(輊)․현감 헌(軒)․대사성 초(軺)․현령 치(輜)가 있고, 딸은 3녀가 증 판서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증 참판 이운후(李云侯:退溪 李滉의 고조부)․안동인(安東人) 김혁(金革:金祖淳의 13대조)에게 출가 했다. 이처럼 자녀들이 모두 현달하니 오늘과 같이 좌윤공파의 문호(門戶)를 크게 번창시킨 것은 실로 공이 끼친 덕으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퇴산공 치는 문정공 희정의 7자로 좌윤공의 7대손이며 홍원현령(洪原縣令)을 지냈다. 맏형 곡(轂)이 경산현령 재임 중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벼슬을 버리고 매부인 배상지와 함께 경북 예천의 용궁(龍宮) 염송산(濂松山) 아래 대죽리(大竹里)로 들어가 시거(始居)하였는데, 이때 공도 함께 들어가 고려조에 대한 지조를 지켰다. 묘소는 지후공의 묘소 바로 아래에 있다.
연원재사의 묘제는 음력 10월 14일이 정일(定日)인데, 보통 후손들이 묘사일 하루 전에 입재(入齋)하여 저녁에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다음날 오전에 묘사를 봉행(奉行)한다.
2. 건물의 구성과 배치
재사는 잣밭골로 들어가면서 좌측에 형성된 작은 골짜기 안에 있는데 이 골짜기의 지형은 ‘야(也)’자 형국을 이루고 있다. 음택(陰宅)을 정함에 있어 야(也)자 형국은 아주 길지라고 전해지는데 지후공(祗侯公, 奕)과 증손자인 퇴산공(退山公, 輜)의 묘소는 ‘야(也)’자의 필순(筆順) 가운데 마지막 획(劃)의 끝부분에 있으며 서남쪽을 바라보며 앞뒤로 자리 잡고 있다. 재사는 묘소에서 서쪽으로 1백 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남동향으로 묘소와 마주보고 있다.
연원재사는 초창시에 8량(樑)의 규모로 건립되었는데 그 후 중간에 화재를 만나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정축(1937)년에 지금의 규모인 10칸의 강당으로 중건되었다. 현재 재사는 강당 1동과 관리인이 평소에 기거하고 묘사 때 제물을 장만하는 주사 1동으로 나누어진다. 강당은 ㄱ자 형태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4칸 크기의 대청을 베풀고 좌우 협칸에는 각각 2칸 크기의 통방을 배치하였으며, 다시 우측 통방의 앞쪽에는 2칸 크기의 통방을 마련하였다.
강당을 건축함에 있어서 대청의 전면과 좌측 협실과 면해있는 벽면에 4분합문을 달아 공간을 넓게 쓰려는 의도가 돋보이는데, 필요시에 협실의 분합문을 들어 올리면 두 개의 공간이 트여서 6칸 크기의 공간으로 변환이 된다. 대청 안쪽의 벽면에는 21세손 두식(斗埴)이 1960년에 지은 기문(記文)이 걸려있고 그 우측에는 안동 가일(佳日)마을 출신으로 국사편찬위원을 지낸 권오인이 쓴 ‘연원재사(燕院齋舍)’ 현판이 게첨되어 있어 재사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강당에 딸린 각 공간의 기능을 살펴보면 대청은 묘사 때 참제원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고 문중의 현안에 대해 의논하는 공간이고, 좌측과 우측의 방은 숙박공간이다. 대청의 동쪽 방에는 묘사 때 주로 수임이나 원로들이 묶고, 서쪽 방에는 연소한 참제원 들이 묶으며, 동재 앞에 마련된 유사방에는 유사들이 기거하면서 제물을 다루고 제반준비를 행한다.
강당의 좌측에 자리한 주사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주사건물의 좌향은 동향이고 규모는 5칸 집으로 형태는 ㄱ자 형이고 지붕은 우진각지붕이다. 공간구성은 가운데 1칸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1칸 크기의 안방을 두고, 마루의 우측에는 각각 1칸 크기의 건넌방과 고방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다시 안방의 앞쪽으로는 1칸 크기의 부엌을 배치하였는데 부엌의 가장자리에는 가작을 설치하여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자 꾀하였다.
3. 기타
1) 關聯儀禮
(1) 墓祭笏記
厥明灑掃布席陳饌○參神○初獻官以下敍立者皆再拜○鞠躬拜興○拜興降神○謁者引初獻官詣盥帨位○盥帨○因詣香案前○跪○焚香○再拜○少退立○執事者一人取盤盞○立于獻官之左○執事者一人執酒注○立于獻官之右○獻官跪○執事亦跪○獻官受盤盞○執事者斟酒于盞○獻官酹于茅上○以盤盞授執事友之故處○俛○伏○興○獻官再拜○謁者引初獻官降復位◎行初獻禮○謁者引初獻官詣香案○前立○執事者一人執酒注立于獻官之右○執事者一人取考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執事者一人取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祭酒○執事者二人奉考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右○獻官號○執事亦號○獻官受考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次受妣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俛○伏○興○少退立○執事者啓飯盖○讀祝○祝取祝板立于獻官之左○獻官以下敍立者皆號○祝號讀祝○畢○獻官以下皆興○獻官再拜○謁者引初獻官降復位○執事者撤酒◎行亞獻禮○贊引引亞獻官詣盥帨位○盥帨○因詣香案前立○執事者一人執酒注立于獻官之右○執事者一人取考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執事者一人取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祭酒○執事者二人奉考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右○獻官號○執事亦號○獻官受考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次受妣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俛○伏○興○少退再拜○贊引引亞獻官降復位○執事者撤酒◎行終獻禮○贊引引終獻官詣盥帨位○盥帨○因詣香案前立○執事者一人執酒立于獻官之右○執事者一人取考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執事者一人取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獻官受盤盞東向立○執事者西向斟酒于盞○獻官奉盤盞授執事奠于故處○祭酒○執事二人奉考妣位前盤盞○立于獻官之左右○獻官號○執事亦號○獻官受考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次受妣位盤盞○祭于茅上○以盤盞授執事反之故處○俛○伏○興○少退再拜○贊引引終獻官降復位行侑食禮○執事者添盞中酒○扳匙○正筯○獻官以下敍立者皆俯伏食頃○祝先起三噫歆○獻官以下俯伏者皆興○進茶○執事者撤考妣位羹○奉水奠之○三抄飯○獻官以下敍立者皆鞠躬少頃○平身○辭神○執事者下匙筯○合飯盖○獻官以下敍立者皆再拜○執事者撤酒撤饌○祝焚祝文○禮畢
(2) 墓祭 祝式
燕院齋舍佐尹公及列位祭壇常 享祝文
연원재사좌윤공급열위제단상 향축문
維歲次(年干支) ○月(干支)朔 ○日(干支) ○世孫某官某 敢昭告于
(유세차 년 간지 모월 간지 삭 모일 간지 기세손모관모 감소고우)
派祖高麗佐尹府君之壇(파조고려좌윤부군지단)
유세차 ○년 ○월(간지) ○일(간지) ○세손 ○가 송구함을 무릅쓰고,
파조 할아버님 고려좌윤 부군(高麗佐尹府君)께 감히 아뢰옵니다.
恭惟我祖 學文裕昆(공유아조 학문유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조께서는 학문으로 후손을 넉넉하게 하였네
文科出仕 忠義報國(문과출사 충의보국) 문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충의로 나라에 보답했네
用伸追慕 栢田封壇(용신추모 백전봉단) 이로써 추모의 정 펼처 잣밭골에 제단을 쌓아
霜露旣降 冞增感愴(상로기강 미증감창)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리어 감모(感慕)하는 마음이 더욱 더하옵니다.
謹以 淸酌庶羞 祗薦歲事 敬奉(근이 청작서수 지천세사 경봉) 공손(恭遜)히 맑은 술과 모든 제수로써 매년 행사로 제사를 올리며
顯○代祖妣夫人(현○대조비부인) ○대 할머님 부인
顯○代祖考高麗銀靑光祿大夫樞密院府事軍器監府君(현○대조고고려은청광록대부추밀원부사군기감부군)
顯○代祖妣夫人(현○대조비부인) ○대 할머님 부인
顯○代祖考高麗別將副正行兵部正郞府君(현○대조고고려별장부정행병부정랑부군)
顯○代祖妣夫人永嘉權氏(현○대조비부인영가권씨) ○대 할머님 부인 영가권씨
顯○代祖考高麗文科府君(현○대조고고려문과부군)
顯○代祖妣夫人安東姜氏配食尙(현○대조비부인안동강씨배식상) ○대 할머님 부인 안동강씨도 공경히 받들어 모셔서 배식(配食)케 하나이다.
饗(향) 흠향(歆饗)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庚子(2020) 後孫赫武 謹撰
글자풀이
* 裕(넉넉할 유) * 昆(후손곤 자손곤) * 冞(두루 다닐 미) * 愴(슬퍼할 창) * 感愴(감창)-感慕(감모)하는 마음이 움직여 슬픔 * 祇(공경할 지)
燕院齋舍 山神祝文(연원재사 산신축문)
維歲次(年干支) ○月(干支)朔 ○日(干支)某官某
(유세차 년간지) ○月(간지)삭 ○일(간지)모관모)
敢昭告于(감소고우)
土地之神權 恭修歲事于先祖考高麗佐尹府君之壇維時保佑
(토지지신권 공수세사우선조고고려좌윤부군지단유시보우)
實賴 神休敢以酒饌祗薦于 神尙
(실뢰 신휴감이주찬지천우 신상)
饗(향)
① 祝式
維歲次年月日于支幾世孫某
敢昭告于
顯幾代祖考高麗中門祇侯贈嘉善大夫吏曺叅判永嘉君府君
顯幾代祖妣貞夫人永嘉權氏之墓氣序流易霜露旣降追惟報本禮不敢忘瞻掃 封塋不勝感慕謹以淸酌庶羞祗薦歲事尙
饗
② 祝式
維歲次年月日于支幾世孫某
敢昭告于
顯幾代祖考高麗門下侍中贈崇祿大夫議政府左叅贊謚僖敬公府君
顯幾代祖妣貞敬夫人冶城宋氏
顯幾代祖妣貞敬夫人永嘉權氏之墓氣序流易霜露旣降追惟報本禮不敢忘瞻掃 封塋不勝感慕謹以淸酌庶羞祗薦歲事尙
饗
③ 祝式
維歲次年月日于支幾世孫某
敢昭告于
顯幾代祖考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行監察謚文靖公府君
顯幾代祖妣貞敬夫人彦陽金氏之墓氣序流易霜露旣降追惟報本禮不敢忘瞻掃 封塋不勝感慕謹以淸酌庶羞祗薦歲事尙
饗
④ 祝式
維歲次年月日于支幾世孫某
敢昭告于
顯幾代祖考贈通政大夫行洪原縣令府君
顯幾代祖妣淑夫人冶城宋氏之墓氣序流易霜露旣降追惟報本禮不敢忘瞻掃 封塋不勝感慕謹以淸酌庶羞祗薦歲事尙
饗
⑤ 山神 祝式
維歲次年月日于支幼學某貫姓名
敢昭告于
土地之神某恭修歲事于先祖考某官府君之墓維時保佑實賴神休敢以酒饌祗薦于 神尙
饗
⑥ 陳設圖 및 敍立圖
考位 妣位 | |||||||||
飯 | 盞盤 | 羹 匙筯 飯 | 盞盤 | 羹 | |||||
麵 | 肉 | 炙 | 魚 | 餠 | |||||
脯 | 熟菜 | 淸醬 | 醢 | 沈菜 | |||||
棗 | 栗 | 梨 | 柿 | 果 | 果 |
祝板 香案 尊所
執事→ ←執事 ←贊者
(西階) (東階)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祝 謁者 贊引 在位者以次敍立
※ 陳設順序:先進果品-脯醢-菜饌-匙筯-盞盤-魚肉-餠麵-飯羹-炙湯
2) 關聯資料
(1) 燕院齋舍重新記
直永嘉治北十里而近有燕尾院梧里洞洞之東麓庚向之阡寔我二十一代祖參判府君衣履之藏也貞夫人祔左曾孫縣令公諱輜亦繼葬焉二十代祖參贊府君之藏在其西麓丙向而前後貞夫人先後祔焉舊無冡人以守之正廟庚子族先龍泉公諱鼎鉉詢及諸宗置祭田若干塍仍創建祭閣八樑以爲齋宿之所矣 高宗丙甲災扵㭗攸因其燼餘架漏牵補誅茅以覆苟且度了者有年矣至是遠近宗盟峻發重建之議醵鍰貲鳩材瓦經始扵丁丑春而越明年春竣功其制凡十間中爲堂而兩夾爲室以適凉燠厨竃庫藏因舊貫焉既落首班一人執爵而旅之曰維我先齋倡自龍翁而至一百六十七年而不幸及災歷四十二年而始克重新玆事或庶幾籍手前修而亦不禁人代今昔之感焉在龍翁之時則適丁昭代右文孝理之化洽于群黎士詠楚茨女歌採蘋莫不以反始報本爲重宜祖考來格而子孫受嘏矣若今之世則頽季也狂潮震盪桑海茫洋先王文教無復遺響而網淪法斁人而默矣矧夫一種無神之論汎滥天下載胥及溺馴而至焚屍毀宔恬不為怪自今以往孔聖所謂卜其宅兆而安曆之春秋祭祀以時思之者終歸扵彌文剩語而已然則吾輩將何修而為善後之圖哉惟願僉宗一乃心膂教養兒孫必須劑量新舊而申之以孝悌之道使知反始報本之為何等所重而克追先猷以敬其祭祀俾吾先齋保不知巋然空閣而永傳千祀之遠此裔承今日第一義詩不云乎以似以續續古之人又云子子孫孫勿替引之盍相與勉旃僉曰唯唯仍屬余爲記
檀紀四二九三年 九月 日 二十一世孫 斗植謹撰
(2) 永嘉君 墓碣銘
【前面大字】高麗中門祗侯 贈嘉善大夫吏曹參判永嘉君權公奕之墓
【碑 文】
故中門祗侯永嘉君權公諱奕之藏在安東府北烏耳洞枕甲之原舊有表漫漶不堪讀後孫將治石改竪以顯刻屬冶城宋浚弼鳴呼公高麗人也距今五百有餘年出處事行史逸無傳生卒表德亦未詳所據者公少博學能文章忠烈王十六年登第與禹祭酒先生倬同榜官至中門袛侯旣致仕優游田里以令名終後 贈嘉善大夫吏曹參判追封永嘉君權氏東方著姓始祖幸佐麗太祖平甄亂官至太師十世而諱至正官佐尹子諱世位樞密院府事子諱良俊兵曹正郎子諱粹文科娶安東姜氏刑部尚書孝昌女寔公皇考妣也配禮賓同正權烈女 贈貞夫人墓祔公子用一門下侍中 贈左參替 謚僖敬孫希正監察 贈左議政 諡文靖是生七男三女男轂版圖正郎輿道監司軫左議政 謚文景輊軒皆縣監軺判事輜縣令女適司僕寺事裵尚志副正李云侯奉禮郎金革以下不盡載語曰世或無根而產芝未有濬源而不流以是觀公之世子姓繁衍名位相承如竹林公山海邃學清節龜峰公德麟文行華秩松鶴公應時至孝治績洛濱公震翰鳩谷公迪立朝謇諤皆卓然爲 王國之藎臣龍泉公鼎鉉雖未貴顯而清名雅行亦爲世所重是公積德遺澤之歷久彌彰盖有不可誣者矣舊表作不詳年代今於改碣也始終殫誠者泰鴈斗植二氏也玆索余言者員外君正默也銘曰 猗公家世麟棷鳳穴篤生偉人有學有烈世代悠荒莫究顛末推其顯者潛光可述有隆其阜苔碑字沒我最以銘垂示杳忽玄黓敦牂
小春節 外後孫 冶城 宋浚弼謹撰
(3) 僖敬公 墓碣銘
【前面大字】高麗門下侍中 贈崇祿大夫議政府左參贊 謚僖敬公安東用一之墓
【碑 文】
安東之世高麗太師權幸之后也高祖諱世位樞密院府事曾祖諱良後兵曹正郎祖諱粹文科考諱奕中門袛侯 贈吏參封永嘉君妣貞夫人權氏禮賓同正烈之女公仕至門下侍中入 本朝 贈左參贊 謚僖敬以孫左相文景公軫貴追 恩也按文景公當麗末國初則公似是忠肅忠宣朝人而無世傳信蹟永嘉誌居于城東門外云葬于府西燕院坐壬阡在永嘉君墓右麓配貞敬夫人冶城宋氏父光啓祔後繼配永嘉權氏父中門袛侯份同堋生二男希正監察 贈左議政 謚文靖希伯中郎將希正生七男三女男轂正郎輿道監司軫左議政 謚文景號敬齋輊軒皆縣監軺文判事 本朝除北伯不赴隱居于龍宮念松山下自號松皐輜縣令女裵尚志司僕寺事 贈兵判李云侯副正金革 奉禮郎轂生三男二女男處中郎將處庸牧使 贈副提學處和司直女潘詠節制使南得儉司直軫生四男四女男孟慶兵使孟度郡守孟貞少尹 贈戶判七臨文正郎女李之誠裵素文吏正申自敬大護軍宋守謙縣監輊生四男四女男若中司直若經若衡若枰進士女金雨寶權均魯存禮孫仲和軺生一男寬義禁府經歷輜生三男一女男致和司直致順主簿致孫司直女李材處庸生一男孝孫萬戶 贈右副承旨處和生一男係生生員孟度生一男準孟貞生五男一女男叔慄參奉叔惕叔惶護軍叔愷仲慎府使女沈貞源僉知七臨生一男琛縣監若中生三男三女男用世叔仁季仁女孫奉孝權柔文仲敬若經生一女李慶春錄事若衡生一男一女男推生員女林貴俊縣監若枰生一男一女男巽司直女權成美參軍寬生六男二女男山海號竹林僉正 贈吏判丙子與六臣同殉 旌閭享魯峯院自海察訪福海壽海號向日齋司正德海得海女李堯丁縣監權守經武科致和生四男自位別侍自育司猛自溫司直自貴致順生一男宗李進武致孫生一男一女男得中監察女鄭以僑翰林曾玄以下繁不勝錄但追錄入享院祠諸賢八世孫德麟號龜峯文正郎晦齋先生高弟享雲谷院九世孫復興號五慕齋壬亂殉節 旌閭享忠烈祠士諤號梅窩正郎 贈左承旨壬亂錄勲享虎溪祠士敏號梅軒司饗主簿 贈左承旨壬亂錄勲 旌閭享玉淵祠於乎距公之世六百有餘 禩矣以若門閥之舊冠冕之盛可謂雄鳴一國而顧世代綿邈文獻無徵匪但遺謨懿蹟之泯焉倂與其生卒年月而失之可勝言哉 正廟已亥十三世孫龍泉公鼎鉉重建齋舎克殫誠力乃於丙戌諸族會議將竪碣于公墓石既具後孫肅永容默澤中五錫跋涉三百里責忠鎬以麗牲之文余固不敢而竊念我先祖副正公爲公之孫甥則揆諸誼分亦有不可終辭爲之銘曰 燕院在城西二十里寔公父子巾舃之藏也蔚乎喬木之世又何蟬赫其簪纓也降六百餘載所恨杞宋之無憑也匪直名跡之俱晦從以生卒之莫詳也迺竪高珉改舊床也微雲來不億其麗曷能使久翳而復章可驗夫深仁厚澤有積于始而必報于終也綴蕪詞而揭崇阡將有感于斯銘也
丙戌五月下澣 外裔孫將仕郎章陵參奉 眞城李忠鎬 謹撰
(4) 文靖公 墓碣銘
【前面大字】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行監察諡文靖權先生之墓
貞夫人彦陽金氏墓附
【碑 文】
花之權盖出於太師氏而積德根基爲當時之最赫世簪纓實玆州之冠加之以先生子若孫黼黻弘猷則冝其文獻之表表可稱而惜乎年代浸遠累經兵燹功名事業生卒年月有不可強攷而只以年代之詳畧特爲序次豈非記事者恨於後日也謹按先生諱希正姓權氏籍安東其鼻祖高麗太師諱幸十世諱至正佐尹四傳至諱粹文科即先生之曾祖也祖諱奕文科 贈吏參封永嘉君考諱用一門下侍中 贈左參贊 謚僖敬先生 贈官至左議政 謚文靖三世追恩以先生之第三子軫之貴也貞敬夫人彥陽金氏府使可器之女有七男三女男轂版圖正郎輿道文監司軫文科左議政世子師傳號敬齋 謚文景輊縣監以孝行 旌閭軒縣監軺高麗文判事入本朝拜大司成除北伯皆不赴號松皐輜縣令以耆職陞通政女裵尚志司僕寺事 贈兵判李云侯副正金革奉禮郎轂三男處中郎將處庸牧使處和司直軫四男孟慶兵使孟度郡守孟貞少尹 贈戶參七臨文兵正輊四男若中司直若經若衡若枰進十軺一男寬經歷輜三男致和司直致順主簿致孫司直以下分派之散在各處非不繁衍而歲久年深詳畧不同有不可枚錄而盖先生之道德文章載在國史家乘而世級漸下遺蹟蕩失無由措其萬一雖若可恨而先生衣履改厝之日松巖權先生好文祭之以文曰惟公應鼻祖之後鳴 世廟之廷可補周袞可調殷羹臨民施澤春雨時榮匡君糾愆秋霜夜橫位足台鼎手合均衡赫世功勲照時儀形一片荒碑萬古姓名觀於此畧可以仰想先生之遺風而他無可攷則後生何述藐余顓蒙忝在外裔之末適守玆州佳覩百歲未遑之盛事不覺歛袵而起敬焉銘曰 殷羹周袞之事業春雨秋霜之氣像一片苔碑之指點萬古姓名之瞻仰
己卯 月 日 嘉善大夫行安東都護府並安東鎭兵馬水軍僉節制使 眞城 李啓魯謹撰
<편집:권혁무(權赫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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