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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조선역사)<東人>

죽재권혁무 2007. 12. 1. 16:29
1575년(선조 8) 동서분당(東西分黨) 이후 서인과 대립하던 붕당.
16세기 이후 성장해온 사림 세력은 1567년 선조 즉위 후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해나갔다. 이들은 명종 때 윤원형(尹元衡)의 척신정치가 빚어낸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폐단을 시정하고 사림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척신정치의 잔재 청산방법을 둘러싸고 심의겸(沈義謙)을 중심으로 한 선배사류와 김효원(金孝元)을 중심으로 한 후배사류 사이에 의견대립이 나타났다. 1575년경 김효원의 이조전랑(吏曹銓郞) 제수를 심의겸이 반대하면서 대립은 더욱 첨예화되어 심의겸을 지지하던 소수의 선배사류들은 서인(西人)으로, 김효원을 지지하던 다수의 후배사류들은 동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동인은 처음부터 서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모였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성분, 학문적 전통, 정치인식, 사회경제적 기반이 매우 다양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경상좌도에 기반이 있던 유성룡(柳成龍)·김명원(金命元)·김성일(金誠一)·우성전(禹性傳)·이경중(李敬中)·한준겸(韓浚謙)·정경세(鄭經世), 조식(曺植)의 문인으로서 경상우도에 기반이 있던 정인홍(鄭仁弘)·최영경(崔永慶), 서경덕(徐敬德)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한 이산해(李山海)·이발(李潑), 이황과 조식의 양쪽 문하에 드나들던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김효원, 그리고 이들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거나 인척 관계에 있던 이원익(李元翼)·이덕형(李德馨)·허엽(許曄)·홍진(洪進)·정여립(鄭汝立)·홍여순(洪汝諄)·송응개(宋應漑)·정지연(鄭芝衍)·유영경(柳永慶) 등이었다. 이들은 척신정치의 잔재 청산에 강경한 입장이었고, 정국 운영에 있어서 비교적 원칙론에 철저하고자 했다. 이들의 정치의식을 보면 이황 문인들을 중심으로 후에 남인(南人)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으로 다른 붕당의 존재에 긍정적이었고, 이들 사이의 시비·정사의 분별을 엄히 하기보다는 조정의 진정을 위한 상호 협력을 더 중시했다. 반면에 조식과 서경덕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후에 북인(北人)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원칙론적 입장을 중시하여 엄정한 시비의 분별을 내세우고 중도적인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며, 정여립이나 정개청과 같이 성리학적인 정치의식과는 일정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비록 동인이 서인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는 공동 보조를 취했지만, 위와 같이 그 구성원의 성격이 다양했기 때문에 일단 정국의 주도권을 쥐자 정치적인 입장이나 현실 인식에 차이가 생겼다. 결국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事) 이후 분열의 조짐을 보이던 동인은 임진왜란이 끝난 1599년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 분리되었고, 북인은 다시 대북(大北)·소북(小北)·골북(骨北)·육북(肉北)·중북(中北) 등 다양하게 분리되어 붕당으로서의 동인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具德會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