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자료.행사 59

숙정(肅靜)

안동권씨시조 묘소 임진년 춘향 때 숙정의 기를 보고 돌아와 숙정肅精 숙정肅精이란 몸의 정기를 바로잡고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몸의 기운을 바로 세우면 물질에 대한 욕심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하늘의 이치가 저절로 밝아진다. 마치 햇빛 아래 거울을 걸어 놓은 것과 같아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춘다. 몸의 기운을 바로 세우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태사공을 공경하면 능히 하늘에 계시는 태사공을 볼 것이다. 肅은 立氣也요, 靜은 定心也라.立氣卽物慾을 不作하고 定心卽天理自明하여 如日下掛鏡하여 陰暗映輝하니 以肅靜敬之하면 能覩在天之靈하리라. 숙은 입기야요 정은 정심야라. 입기즉물욕을 부작하고 정심즉천리자명하여 여일하괘경하여 음암영휘하니 이숙정경지하면 능도재천지령하리라. 시조묘 앞 ..

안동권씨 대종회 종무위원회

안동권씨 대종회 종무위원회에 다녀오다. 2011년3월18일11:30 안동 태사묘(廟) 숭보당에서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권정달 대종회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안건처리 몇 건 중에 시조, 아시조님의 관복(冠服)교체에 대하여 아래 A안으로 결정되었으며 점심식사 후 태사묘 해설사의 설명 듣고 해산하였다. 36世 혁무 편집

의성김씨 종택

1. 의성 김씨 종택[義城金氏 宗宅] 의 저자 이중환(1690-1752)은 양반, 선비가 살만한 영남의 4대 길지로 안동의 도산, 하회, 천전, 봉화의 닭실을 꼽았다. 그가 꼽은 4대 길지 중 하나인 천전마을에 의성김씨 종택이 있다. 에는 이곳에 대하여 "안동의 동남에 있는 임하천(臨河川)은 청송읍 시냇물과 하류가 황강(潢江)물과 합류하는 곳이다. 임천(臨川)에는 학봉(鶴峰) 김성일(金城一)이 살던 옛 터가 있다. 지금도 문족(門族)이 번성하여 유명한 마을이 되었고, 그 옆에는 몽선각(夢仙閣)과 도연선찰(陶淵仙刹)의 경치 좋은 곳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에서 영남의 4대 길지 중 한 곳으로 꼽은 의성김씨 종택이 있는 천전마을은 안동 시내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를 타고 반변천을 따라 계속 직진..

대구 인근 가볼만한곳

대구 인근 가볼만한곳 역사 속으로… 고대사회에서 20세기까지 모명재- 20세기 초 대구지역 재실 건축의 형식 옻골마을- 전형적인 양반마을 양식·생활 볼 수 있는 곳 수성구 남부정류장 뒤편의 모명 → 청명한 하늘과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던 가을도 잠시, 어느덧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겨울.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선조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다가오는 겨울방학을 맞아 학교 가까이 학생들이 찾아가 볼만한 문화유적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이 귀화한 후 그의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것이다. 두사충의 호(號)는 모명(募明)으로 중국의 두릉(杜陵)이 고향이다.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그해..

안동권씨 계보도

안동 권씨 계보도 시 조 권행(幸) 태사공 (太師公) 2 세 권인행 (仁幸) 낭중(郞中) 3 세 권책 (冊) 호장(戶長) 권윤(綸) 4 세 권균한 (均漢) 별장(別長) 권광한 (光漢) 호장(戶長) 권겸한 (謙漢) 호장(戶長) 권응화(應和) 별장(別長) 5 세 권자팽 (子彭) 호장(戶長) 권굉옥 (宏玉) 호장(戶長) 권굉진 (宏眞) 호장(戶長) 권위융 (位融) 호장(戶長) 권공황 (公晃) 별장(別長) 6 세 권선개 (先蓋) 교위(校尉) 권유윤 (儒允) 호장(戶長) 권황헌 (黃軒) 호장(戶長) 권안굉 (安宏) 호장(戶長) 권진부 (珍夫) 호장(戶長) 7 세 권염 (廉) 교위(校尉) 권수 (守) 교위(校尉) 권정윤 (廷允) 권혁 (奕) 호장(戶長) 권진평 (進平) 8 세 권이여 (利輿) 호장(戶長) 권정간 (..

권진(權軫)

1357(공민왕 6)~1435(세종 17).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호는 독수와(獨樹窩). 아버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 희정(希正)이다. 1377년(우왕 3)에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 권세가인 염흥방(廉興邦)의 조카딸과 결혼하라는 제의를 거절하여 여러 해 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몇 해 뒤 의창현(義昌縣)의 현령이 되어 연해안지방에 출몰하던 왜구를 격퇴하는 한편, 폐단을 제거하고 빈민을 구제했다. 이 일로 당시 시중이었던 이성계(李成桂)의 천거로 전주판관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조전원수(助戰元帥) 성석린(成石璘)이 평안도로 출진할 때, 그의 추천으로 경력(經歷)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지형조사(知刑曹事)에 이어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지내고, 1406년 강원도관찰사로 부..

퇴계 이황(退溪 李滉)

퇴계 이황의 일생 1. 출생 :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李滉 : 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이며, 관향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현 노송정 종택 태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植)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와 춘천 박씨 두 분이다. 김씨는 잠, 하, 신담부인 등 2남 1녀를 두고 별세하였고, 재취로 들어온 박씨가 서린(일찍 죽음), 의, 해, 증, 황 등 5형제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막내이다. 2. 초년기 : 출생에서 33세 때까지 유교경전을 연구하는데 열중하였던 수학기 퇴계의 부친은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학봉종택(鶴峯宗宅)

이 건물은 학봉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번지에 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의성김씨 학봉종택(義城金氏 鶴峯宗宅)은 지대가 낮아 자주 침수된다 하여 학봉의 8대손 광찬(光燦)이 1762년에 이곳에서 100m 떨어진 소계서당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고 한다. 1964년에 종택을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이 때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소계서당으로 쓰도록 하였고, 소계서당을 개조하여 종택의 사랑채로 꾸며 사용하였다. 비교적 평탄한 대지에 서남향으로 자리잡은 이 종택은 근년에 지은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좌측에 정침과 그 뒤쪽에 사당이 있고, 마당 건너편에는 근년에 지은 운장각과 정자가 서북향으로 ..